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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225
한자 仙川里
이칭/별칭 선관,선천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천문로[선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지곡면 선천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선천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선천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선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선천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선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선천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선천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로 개편
행정구역 선천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95㎢
가구수 167가구
인구[남여] 342명[남 174명, 여 168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선관(仙舘)은 객사의 ‘사(舍)’자 뜻과 같은 관(館)자로 바꾸어 선관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하천을 의미하는 ‘천(川)’을 더하여 선천이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현재의 마을 이름인 선천(仙川)은 신선처럼 아름다운 하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괴들·괴평(槐坪) 마을은 임진왜란 때 귀산 박씨(龜山朴氏)가 자녀와 함께 피란 와서 살게 되었으며, 동네 앞 언덕에 회나무가 많다 하여 괴들·괴평이라 하였다. 화동(花洞)은 선관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화주현 소재지 터라 하여 화동이라 부른다. 원래는 화동(華東)이라 해야 하나 언제 부터인지 바뀌어 현재는 화동(花洞)이라 쓰고 있다.

학지(鶴旨)는 약 270년 전 안동 권씨가 처음 이 마을에 살았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마을 앞에 큰 숲이 있는데 학이 많이 날아와 앉았다고 하여 학지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영천 복성에 크게 공을 세운 지산(智山) 권응화(權應鏵)[1547~1610] 선생이 원종공신 2등훈에 등재되고 관직을 떠나면서 개척한 마을이다. 그 후 선생의 후손들이 세거해 오고 있다.

선천리는 1914년에 영천군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이 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선천리는 남쪽에 구릉성 평야가 있으며 그 앞에 고현천(古縣川)이 흐른다. 고현천 맞은편에 백학산(白鶴山)이 있으며 그 너머 화산면 가상리가 있다. 보현산(普賢山)에서 발한 산맥이 남쪽으로 이어져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고현천을 만난다. 편리한 교통, 풍부한 농산물과 함께 기암절벽이 곳곳에 전개되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마을 중앙에 환골 저수지[햇골지]가 있다.

[현황]

선천리는 선천1리·선천2리·선천3리로 세분할 수 있고, 자연 마을로는 선관·학지·화동·괴들·탑안 등이 있다. 선천리 면적은 3.95㎢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67가구, 342명으로, 남자가 174명, 여자가 168명이다. 선천리는 6·25 전쟁 당시 1950년 9월 4일부터 15일까지 12일간 영천을 사수하려는 국군과 영천을 공격하는 인민군 간에 최후의 격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도처에 당시 팠던 방공호가 산마루마다 남아 있다. 옛날 화주현 소재지 터로서 교통과 입지, 그리고 경치가 좋은 곳이다. 평야가 넓고 양지 바른 곳으로 벼농사 및 밭농사가 잘 발달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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