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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492
한자 史丁火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 이전 - 사정화현 개설 추정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연표보기 - 사정화현을 신녕현으로 명칭 변경
개정 시기/일시 776년 1월연표보기 - 사정화현으로 명칭 복고, 신녕현과 혼용됨
관할 지역 사정화현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정의]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개설]

사정화현(史丁火縣)절야화군(切也火郡)을 구성하는 5개 영현의 하나였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사정화현신녕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 원래의 지명인 사정화현으로 환원된 듯하며, 이후에는 사정화현신녕현의 두 지명이 혼용되었다, 사정화현의 위치는 오늘날의 영천시 화산면 일대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사정화현은 757년 12월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사정화현(史丁火縣)신녕현(新寧縣)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절야화군임고군으로 개명되면서 그 영현인 죽장이부곡(竹長伊部曲)은 장진현(長鎭縣)으로, 골화소국(骨火小國)에 설치된 현은 임천현(臨川縣)으로, 도동화현(刀冬火縣)은 도동현(道同縣)으로, 사정화현(史丁火縣)신녕현(新寧縣)으로, 매열차현(買熱次縣)민백현(黽白縣)으로 각각 바뀌었다.

이로써 757년 무렵 임고군에는 치소와 5개의 영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거니와, 그 이전 절야화군의 모습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다만 각 군현의 기원은 9주 5소경 제도가 완비되던 685년(신문왕 5) 무렵에는 이와 같은 체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군이 6세기에 처음 나타나고, 현이 7세기에 처음 나타난다는 점에서 사정화현 성립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사정화현의 탄생은 신라의 팽창으로 인한 지방 제도의 개편과 삼국 통일 이후의 제도 개편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4, 지리지 양주 임고군 항목에는 “임고군은 본래 절야화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영주(永州)이다. 영현이 다섯이었다. 장진현은 지금의 죽장이부곡이다. 임천현은 조분왕골화소국을 쳐서 얻어 현(縣)을 설치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영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도동현은 본래 도동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영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신녕현은 본래 사정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민백현은 본래 매열차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신녕현에 합쳐져 속하였다[臨臯郡 本切也火郡 景德王改名 今永州 領縣五 長鎭縣 今竹長伊部曲 臨川縣 助賁王時 伐得骨火小國 置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永州 道同縣 本刀冬火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永州 新寧縣 本史丁火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黽白縣 本買熱次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新寧縣]”라고 하였다.

[변천]

신라 시대 사정화현[신녕현]은 양주(良州) 절야화군 영현의 하나였다. 고려 시대에는 현종이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으로 삼았으며, 공양왕 때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초에 현감(縣監)으로 삼으면서 치소를 장수역(長壽驛)[오늘날의 영천시 신녕면]으로 옮겼으며, 연산군이 현을 없애고 넷으로 나누어 주변 읍들에 편입시켰다가 다시 복구하였다. 옛 신녕현신녕현[현재 영천시 신녕면] 동쪽 25리에 있었고, 고종 때 군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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