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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523
한자 衡平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4년 9월연표보기 - 영천 형평분사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4월 15일연표보기 - 영천 형평분사의 형평사원 이송화 북안면에서 피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의 영천형평분사에서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개설]

형평 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가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이다.

형평사 혹은 조선형평사는 1923년 5월부터 지·분사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1923년 12월까지 전국적으로 80여 지·분사가 설립되었고, 1926년 126개, 1930년 196개, 1934년 205개를 설립하여 전국적으로 조직화된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형평 운동은 1935년 4월 24일 제13차 형평사 전국대회에서 이름을 대동사(大同社)로 변경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경상북도에는 대구형평지사가 1923년 6월에 설립되었고, 경주형평분사가 1923년 7월, 상주수평동맹회가 1923년 8월, 예천형평분사가 1923년 8월, 그리고 영천형평분사가 1924년 9월에 설립되어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다.

[내용/구성]

영천 지역에는 1924년 9월 16일 영천형평분사가 설립되어 형평 운동을 모범적으로 전개하다가 1928년 4월 15일 영천군 북안면에서 형평사원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1928년 4월 15일 영천형평분사의 형평사원인 영천면 범어리의 이송화(李松華)[또는 이송아지(李松芽之)]가 영천군 북안면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이송화가 북안면에서 죽은 쇠고기를 판매하였다 하여 당지 농민들과 다투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대구의 경북형평지사(慶北衡平支社)에서는 지사장 김경삼 등 수십 명의 형평사원이 급파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격분한 형평사원들이 영천으로 집결하였다. 영천경찰서에서는 영천형평분사의 사원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면서 2차 충돌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무마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이 사건은 전국 각처 사회 단체의 관심을 집중시켜, 1925년 8월 예천형평분사를 일반인들이 습격하였던, 이른바 예천사건(醴泉事件) 이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려는 연합 회의가 거듭되고 전국 각처에서 성토 대회와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의의와 평가]

형평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영천 사건은 1923년 8월의 김해 사건과 1925년 8월의 예천 사건과 더불어 잠재되어 있던 계급 문제가 불러온 참극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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