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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594
한자 李衡祥手稿本
이칭/별칭 병와유고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2월 7일연표보기 - 이형상 수고본 보물 제65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형상 수고본 보물 재지정
소장처 병와유고각 - 경상북도 영천시 거북바위길 30[성내동 97-1]지도보기
성격 문화재
저자 이형상
권책 10종 15책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호연정 내 병와유고각에 있는 조선 후기 이형상(李衡祥)이 저술한 책.

[개설]

이형상은 25세 되던 1677년(숙종 3)에 사마시(司馬試), 1680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에서 4년, 외직에서 8년 등 모두 12년간 관직에 있었던 이외에는 81세를 일기로 마칠 때까지 영천 소재 호연정(浩然亭)에서 학문에만 전념하여 142종 326여 책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형상은 성리학뿐 아니라 예악·역사·전기·지리·시문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실학에도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이 유고는 비록 조선 후기에 저술된 것이지만 국학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저술 중에서 10종 15책을 보물 제652-1~10호로 일괄 지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역학(易學) 관계 저술인 『선후천(先後天)』, 신라·고려 및 조선 초기의 속악(俗樂)을 모아놓은 『악학편고(樂學便考)』, 고려 및 조선 초기의 가곡을 수집해놓은 『악학습령(樂學拾零)』, 강화(江華) 및 수어책(守禦策) 관계 저술인 『강도지(江都誌)』, 제주도 관계 저술인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국책주의록(國策奏議錄)인 『둔서록(遯筮錄)』, 유목별(類目別) 색인서인 『복부유목(覆瓿類目)』, 잡집류(雜集類)인 『정안여분(靜安餘噴)』, 이본을 포함한 대마도(對馬島)의 지리서인 『동이산략(東耳刪略)』 등이다.

[저자]

이형상[1653~1733]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 순옹(順翁)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를 지낸 이주하(李柱夏)이다. 1677년 사마시를 거쳐 1680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호조좌랑을 지내다가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덕유산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형상이 1703년(숙종 29)에 제주목사로 있을 때 석전제를 지내던 3읍의 성묘를 수리하여 덕망 높은 선비를 뽑아 글을 가르치게 했으며, 몽매한 풍속을 타파한다면서 129개의 신당을 불태우는 등 불교와 토착신앙을 배척하고 유교를 권장하였다. 1727년(영조 3)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영천에 호연정을 세워 학문에 힘쓰면서 『둔서록』을 초안했다.

1728년 가선대부가 되고, 소론의 일파인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경상도 소모사가 되었으나, 같은 소론으로서 당론을 누설했다는 무고를 받고 잠시 투옥되었다. 벼슬은 한성부윤에 이르렀고, 1735년 영천의 성남서원에 제향되었으며, 1796년(정조 20) 청백리에 뽑혔다. 1829년(순조 29)에는 제주유생들이 그를 기려 영혜사(永惠祠)에 제향했다. 시조에 깊은 관심을 가져 자료를 널리 모았으며, 시조를 한역한 작품 77수를 남겼다.

저서에 문집 『병와집』, 『둔서록』, 『강도지』, 『남환박물지』, 『악학편고』, 『예학편고(禮學便考)』, 『성리학대전』 등 다수가 있다.

[형태/서지]

『선후천』이형상이 1726년(영조 2)에 지은 역학서로 상하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9×20.2㎝ 크기로 16행 32자로 쓴 필사본으로 보물 제652-1호로 지정되었다.

『악학편고』이형상이 1727년(영조 3)에 지은 악학서로서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24×20.5㎝ 크기로 17행 16자로 쓴 필사본으로 보물 제652-2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악학이론과 아악과 속악을 소개한 필사본 악학서이다.

『악학습령』이형상이 1726년~1727년(영조 2~3) 사이에 완성된 시조 1,109수가 실린 시조집으로 일명 ‘병와가곡집’이라고도 한다.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23.3×22.8㎝ 크기로 15행 25자로 쓴 필사본으로 보물 제652-4호로 지정되었다.

『강도지』이형상이 1696년(숙종 22)에 완성한 강화도의 지리지인 동시에 봉수대·군령·군비·군사 전반에 대한 관방 수비수어책을 기술한 필사본으로 2권 2책이며 30×21㎝ 크기로 된 필사본으로 보물 제652-5호로 지정되었다.

『남환박물지』이형상이 1704년(숙종 30)년에 완성한 제주도 지리서로서 제주도 풍물 및 민족·자연 생태·자연경관·관방 수비에 관련된 필사본으로 1책 36.5×22㎝ 크기로 보물 제652-5호로 지정되었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 18)에 당시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였던 이형상이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회한 장면을 화공 김남길이 그린 채색 화첩으로 1첩 54.8×35㎝ 크기이고 반곽은 46×29㎝ 크기이다. 상단은 그림으로 하단에는 당시의 관방 및 물산에 대한 기록으로 되어 있는데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되었다.

『둔서록』이형상이 1727년(영조 3)에 쓴 초고본으로, 조정에 올린 진의(秦議)한 내용으로 38.6×19㎝ 크기이고 12행 24자로 기술한 필사본으로 보물 제652-7호로 지정되었다.

『복부유목』 1책은 이형상이 1721년(경종 1)에 남긴 초고본으로 병와 자신이 쓴 글을 각종의 글을 유목별로 나누어 정리한 서목으로 1책 29×21.5㎝ 크기이고 행자수는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필사본 초고이며 보물 제652-8호로 지정되었다.

『정안여분』이형상이 1732년(영조 8)에 자신이 쓴 서술을 서목별 내용을 요약한 초목으로 1책 29×20㎝ 크기이고 12행 21자로 쓴 필사 초고이며 보물 제652-9호로 지정되었다.

『동이산략』이형상이 1694년(숙종 20)에 저술한 일본 지리에 관한 박물지이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당시 출정한 왜장과 군병·병기·병서 및 일본 지형 정세를 기술한 저술로 1책 27.2×20.2㎝ 크기이고 12행 27자 쓴 필사 초고본이며 보물 제652-10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병와 이형상의 저술은 첫째, 실학적·실증적 태도로 쓴 점, 둘째, 국가 관방의 수비수어를 위한 주변 국가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라는 점, 셋째, 예와 악학의 겸비를 통해 붕당의 국가 위기를 조정하려는 철학, 넷째, 당대의 지식인들의 글쓰기의 내용과 형식을 고찰할 수 있는 방대한 저술이라는 측면에서 귀중한 기록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 2월 7일 보물 제6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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