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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15
한자
이칭/별칭 졸도파,솔도파,제다,탑파,부도,방분,원총,영묘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봉죽리 6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집필자 박홍국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남아 있는 석조 문화재.

[개설]

탑은 졸도파(卒都婆)·솔도파(窣堵婆)·제다(制多)·탑파(塔婆)·부도(浮屠)·방분(方墳)·원총(圓塚)·영묘(靈廟) 등으로 불리며, 처음에는 석가모니의 묘(墓)였다. 그 뒤 불교의 전파에 따라 인도·중국·한국·일본 등 불교국에서는 가장 존엄함을 나타내는 건축 방법과 재료를 택하여 다수의 탑이 건립되었다.

중국은 전탑(塼塔), 일본은 목탑(木塔)인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화강암을 비롯한 석재를 가장 많이 사용하여 석탑(石塔)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목탑·전탑·금동 탑이 소수나마 건립되었다. 탑의 평면 형태는 원형·방형·육각형·팔각형 등이 있고, 탑의 층수는 단층·3층·5층·7층·9층·13층 탑이 있으며, 이 중 3층 탑이 가장 많다.

또한 우리나라의 탑 중에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초기까지는 규모가 큰 탑이 다수 건립되었으나, 그 후 점점 규모가 작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이런 현상은 탑의 형태에도 영향을 끼친 결과 초기의 석탑은 그 규모 때문에 결구(結構)되는 석재의 수량이 많았으며, 후대의 석탑은 규모가 작아지면서 사용되는 석재 수가 대폭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교 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물은 당탑(堂塔), 즉 법당과 탑이다. 그러므로 법당과 탑은 공통적으로 주요 예배 대상이 됨과 동시에 가람배치(伽藍配置)[절의 건물 배치]에 있어서도 핵심을 이루는 불교 조형물이다. 본 항목의 대상은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탑을 그 대상으로 했으며 근현대에 축조된 석탑은 제외한다.

[우리나라 탑의 역사]

탑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고 불교 사원이 창건되는 삼국 시대에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목탑이 많이 건립되었으나, 내구성이 약한 특성 때문에 모두 없어지고 소수의 석탑만 남아 있으며, 탑의 규모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영천 지역에 남아 있는 삼국 시대의 석탑은 알려져 있지 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왕도였던 경주 지역에 수많은 사원이 건립되면서, 이웃한 영천 지역에도 적지 않은 불사(佛事)가 이루어졌을 것이나 통일신라 시대 탑 중에서도 전기에 속하는 7~8세기 탑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9세기 대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되는 신월리 삼층 석탑화남리 삼층 석탑이 현재까지 그 모습을 전하고 있다. 신월리 삼층 석탑은 현재 높이 4.75m로 영천 지역의 석탑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은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전국 각지에 크고 작은 사원이 건립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국왕 또는 최고위층 귀족이 아닌 계층이 세웠던 비교적 소규모 사원도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영천 지역에 남아있는 석탑 중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은 7기인데, 이 중 9세기에 건립된 신월리 삼층 석탑화남리 삼층 석탑[동·서탑]을 제외하면 4기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은해사 거조암 삼층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이다. 영천 정각리 삼층 석탑은 하층기단의 안상(眼象)과 연화문이 특징적이며, 은해사 중암암 삼층 석탑은 해발 670m에 입지한 산지(山地)석탑으로 주목된다. 한편 영천 지역의 고려 석탑 4기는 그 양식에 있어 모두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조선 시대는 종래의 국시(國是)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면서 국왕 등을 비롯한 유력자(有力者)가 발원하여 창건 또는 중건된 소수의 사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불교 조형물 건립은 고려 시대에 비하여 쇠퇴일로를 걸었다. 따라서 석탑은 그 규모도 한층 더 작아지고 치석(治石)솜씨도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까지 영천 지역에서 조선 시대 석탑은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 및 입지]

영천 지역의 탑은 크게 팔공산보현산에 입지한 사찰 및 사지에 분포한다. 팔공산 권역에는 은해사의 말사인 거조암 삼층 석탑·중암암 삼층 석탑·은해사 석탑·운부암 석탑·신원리 사지 삼층 석탑·진불암 일대 석탑·부귀사 석탑 등 현재까지 확인되는 탑은 7기로 가장 많은 분포를 이루고, 보현산 권역에는 정각리 삼층석탑, 공덕동 삼층 석탑 등 2기가 남아 있다. 그 외 보현산에서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화산한광사화남리 삼층 석탑[동·서탑] 2기가 있다. 이들 보현산·화산·팔공산은 영천의 북쪽과 서쪽의 경계를 이루며 보현산~화산~팔공산의 산맥을 따라 모두 10개소에 11기의 탑이 남아 있다.

그 외 영천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구룡산에는 용호리 사지 삼층 석탑[영지사 삼층 석탑] 1기가 있고, 영천의 중심부인 유봉산 자락에는 신흥사 삼층 석탑[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 죽림사 석탑 등 2기가 남아 있다. 용호리 사지 삼층 석탑은 기단부(基壇部)만 남아 있고 탑신부(塔身部)는 1959년의 사라호 태풍 때 무너져 대창 지서에서 임시 보관하다가 영지사로 옮겼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영천 지역의 잔존하는 14기의 탑 중 12기가 보현산·화산·팔공산·구룡산에 분포하는 특징을 가진다.

[영천 지역 탑의 특징]

영천 지역의 석탑은 2011년 현재까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7기, 비지정이 8기로 모두 15기이다. 이는 영천이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와 이웃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폐사된 후 아직까지 땅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천 지역 석탑은 대부분 팔공산 일대에 집중되고 있다. 팔공산은 불교의 도량이라 할 만큼 사찰과 폐사지의 수가 많아 석탑 또한 이 일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또 팔공산은 산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석재 조달이 용이했으리라 생각된다.

영천 지역의 지질은 경계부를 제외하고는 주로 퇴적암 계통의 셰일층[청석]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화강암의 석재조달이 용이한 팔공산에 8기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보현산에 2기, 화산에 2기 그리고 구룡산에 1기 등 모두 13기가 집중되어 있다. 신월리 삼층 석탑과 죽림사 석탑은 외부에서 가져온 석재로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15기의 석탑이 있는 사원 또는 절터는 신월리 삼층 석탑만 평지사원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산지(山地)사원이다. 또한 화남리 삼층 석탑만 쌍탑가람(雙塔伽籃)을 이루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단탑(單塔)이다.

시대별로는 신월리 삼층 석탑화남리 삼층 석탑[2기], 신원리 사지 삼층 석탑 등 4기가 통일신라 시대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은해사 거조암 삼층 석탑[1기]이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나머지 10기는 고려 시대의 석탑과 고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탑의 형식은 영천 지역의 석탑 15기 중 14기는 3층이며, 죽림사 석탑만 3층 이상으로 추정된다[현재 4개의 옥개석(屋蓋石)이 남아 있음]. 또 단층기단을 가진 공덕리 삼층 석탑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중기단(二重基壇)을 구비하고 있다. 아쉽게도 영천 지역의 석탑 가운데 상륜부(相輪部)가 남아있는 것은 1기도 없어 그 형식을 알 수 없다. 풍령공[풍탁공, 풍탁홈]이 남아 있는 것은 신월리 삼층 석탑이 유일하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모별로 보면 4.75m인 신월리 삼층 석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4m 이하의 소형탑이다.

[현황]

현재 영천 지역에 잔존하는 탑은 모두 석탑으로 지정문화재가 7기이고 비지정문화재가 8기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은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보물 제465호], 영천 화남동 삼층 석탑[보물 제675호, 동·서탑], 은해사 거조암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은해사 중암암 삼층 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2호],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3호], 영천 정각리 삼층 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석탑은 청통면 신원리[안신원] 사지의 삼층 석탑, 운부암 석탑, 묘적암 삼층 석탑[현재 분실], 진불암 일대 석탑, 부귀사 석탑, 은해사 석탑[석탑재만 있음], 용호리 사지 삼층 석탑[영지사 삼층 석탑], 죽림사 내 석탑 등이 확인된다. 비지정 석탑은 대부분 붕괴된 채 방치되어 있거나 원래 자리에서 옮겨진 상태로 훼손의 정도가 심한 편으로 시급한 정비가 요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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