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30
한자 鄭幹
이칭/별칭 정권(鄭權),도중(道中),명고(鳴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2년 9월 19일연표보기 - 정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5년 - 정간 국자생원에 임명됨
활동 시기/일시 1725년 - 정간 증광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37년 - 정간 청양현감에 임명됨
몰년 시기/일시 1757년 9월 29일연표보기 - 정간 사망
묘소|단소 정간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정간 사당 -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 창대서원(昌臺書院)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정간 사당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북계영당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일
저술 명고집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가계]

정간(鄭榦)의 본관은 영일. 초명(初名)은 정권(鄭權), 자는 도중(道中), 호는 명고(鳴皐)이다. 증조는 정원호(鄭元護)이고, 조부는 정세진(鄭世振)이며, 아버지는 정사징(鄭思徵)인데, 정간의 공적으로 인해 각각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좌승지(左承旨),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증(贈) 정부인(貞夫人) 월성 이씨(月城 李氏)[경주 이씨]로 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 이두병(李斗柄)의 딸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남양 홍씨(南陽 洪氏)로 홍처약(洪處約)의 딸이다.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족제(族弟) 정요(鄭橈)의 아들 정주변(鄭周弁)으로 뒤를 이었으며, 사위는 김치(金緻)·박사철(朴思澈)·신근인(申近仁)·장윤혁(張胤赫)·이구상(李龜祥) 등이다.

[활동 사항]

정간은 1692년(숙종 18) 9월 19일 태어났다.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그를 횡계(橫溪)에 취학시켰다. 정간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문하에서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남창(南窓) 정제(鄭梯) 등과 함께 열심히 경전의 깊은 뜻을 익혔다.

1715년(숙종 41)에 국자생원(國子生員)이 되고, 1725년(영조 원년)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예괴원(隸槐院) 부정자(副正字)가 되고, 1727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돌아와 3년 상을 치렀다.

1733년(영조 9)에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로서 제원찰방(濟原察訪)에 나아가고, 이듬해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올랐으며, 좌랑(佐郞)으로 함경도사(咸鏡都事)에 나아갔다.

1737년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청양현감(靑陽縣監)을 지내고, 1741년에 영월부사(寧越府使)를 거쳐 선천부사(宣川府使)를 역임했다. 이어 부윤을 거쳐 우부승지(右副承旨)와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이르렀고, 1757년(영조 33) 9월 29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간은 청백리로서 고을을 다스림에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 모두가 칭송했으며, 임금의 하사한 계문(癸文)에 이르기를 “옛 고향에 돌아오니 생각 전하기를 힘씀으로 하여라. 맹세하기를 곧기는 얼음처럼 맑으며 잡음은 간략하고 베풀기를 넓게 하기를. 오고 가는 맑은 바람은 여러 고을살이한 지방의 송덕비에 빛나도다”라 하였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9권 5책의 『명고집(鳴皐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에 있으며, 채제공(蔡濟恭)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영천시 과전동창대서원(昌臺書院)에서 제향하고 있으며, 영천시 녹전동북계영당(北溪影堂)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