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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87
한자 徐自爾
이칭/별칭 원지(遠之),심계(心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서자이 창의하여 영천성 탈환 주도함
몰년 시기/일시 1629년 7월 16일연표보기 - 서자이 사망
묘소|단소 서자이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사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이천
대표 관직 내자시직장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여생을 보낸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자이(徐自爾)의 자는 원지(遠之), 호는 심계(心溪)이다. 고조는 부사(府使) 서극인(徐克仁)이며, 증조는 참군(參軍) 서건손(徐建孫), 조부는 부사맹(副司猛) 서승(徐繩)이다. 부친은 조산대부 영천교수(朝散大夫永川敎授) 서백령(徐百齡)이며, 모친은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부장(部長) 이부(李桴)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사직(司直) 정재(鄭宰)의 딸이며, 슬하에 3남 1녀를 두니, 아들은 판관(判官) 서호(徐浩),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서옥(徐沃), 서양(徐瀁)이며, 사위는 신천인(信川人) 강경후(康景侯)이다.

[활동 사항]

서자이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여러 사람과 창의하여 영천성(永川城) 탈환에 앞장섰고 이어 경주성(慶州城) 전투에서도 돌칼과 대나무 창으로 싸웠다. 병사 박진이 이를 장하게 여겨 활과 양식을 도운 사실이 창의록(倡義錄)에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을 역임하였고 1629년(인조 7) 7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서자이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사리 감나무골 세등(細嶝)에 있으며, 창산(昌山) 성원표(成元杓)의 갈문(碣文)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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