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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187
한자 李雲載
이칭/별칭 선숙(善淑),매남(梅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18년 4월 5일연표보기 - 이운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81년 10월 8일연표보기 - 이운재 사망
묘소 이운재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당곡리 간장곡(幹長谷) 산 7번지 지도보기
관련 유적 매남정 -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
성격 입향조
성별
본관 여주

[정의]

여주 이씨(驪州李氏) 경상북도 신녕현(新寧縣)[현 영천시] 입향조.

[가계]

이운재(李雲載)는 고려(高麗) 중윤(中尹)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를 현조(顯祖)로 하며, 조선 태종(太宗) 때 보국공신(輔國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좌의정(左議政)으로 구산군(龜山君)에 봉군된 이번(李璠)을 파조(派祖)로 하는 여주 이씨(驪州 李氏) 귀산군파(龜山君派) 후예이다.

이운재의 자는 선숙(善淑), 호는 매남(梅南)이다. 고조는 이몽동(李夢東)이며, 증조는 이성길(李聖吉), 조부는 이순걸(李舜傑)이다. 아버지는 이세로(李世老)이며, 어머니는 인동 장씨(仁同 張氏)로 장순필(張順弼)의 딸이다. 부인은 증(贈) 숙부인(淑夫人) 평산 신씨(平山 申氏)로 신경필(申敬必)의 딸이며, 슬하에 1남을 두니 이종달(李棕達)이다.

[활동 사항]

이운재는 1718년(숙종 44) 4월 5일에 귀산(龜山)의 성동(城洞)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이 병석에 있을 때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약 수발과 음식 공양을 남에게 맡기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하자 어린 몸으로 홀로 산중에서 치성을 드렸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음으로써 소생시켰다는 효문(孝聞)이 돌아 향중에서 관청에 포계(褒啓)를 했으나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라며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약관 이후에 경전(經典)을 읽고 문학의 수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과거(科擧)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효양에만 정성을 다 했다.

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전후 6년간 상제(喪祭)의 도리를 유감없이 하였으며, “부모가 계시지 않는 세상이 무슨 영화가 있으랴?”면서 영천(永川)의 매산(梅山) 아래에 움막을 짓고 지내며 스스로 ‘매산거사(梅山居士)’로 자처하면서 고반(考槃)의 낙을 즐기다가 1781년(정조 5) 10월 8일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이운재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당곡리 간장곡(幹長谷) 산 7번지 임좌(壬坐)에 있으며, 문소(聞韶) 김헌주(金獻周)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에 매남정(梅南亭)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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