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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24
한자 鄭元興
이칭/별칭 정용복(鄭容復),규백(圭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 6월 14일연표보기 - 정원흥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정원흥 진량공립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2년 11월 - 정원흥 일본에서 항일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41년 1월 - 정원흥 중국 북경, 천진 등지에서 활약
활동 시기/일시 1944년 3월 - 정원흥 동촌비행장 폭파계획 중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945년 2월 21일연표보기 - 정원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정원흥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3년 10월 - 정원흥 추모비 건립
출생지 정원흥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지도보기
활동지 정원흥 - 일본, 중국, 대구
묘소 정원흥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매곡] 선산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앙항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영일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원흥(鄭元興)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규백(圭伯), 원래 이름은 정용복(鄭容復)으로 1912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매곡]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사망하였다.

아버지 정종식(鄭宗植)과 어머니 밀양 손씨(密陽孫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백부 정인식(鄭寅植)과 백모 서흥 김씨(瑞興金氏)에게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정원흥은 1932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4년간 오사카[大阪] 기옥현 등지에서 고학하면서 항일 독립 운동을 하고자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36년 귀국하였다.

1941년 1월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천진 등지에서 동지들과 연계하여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3월 초순 임시정부 계통의 공작원으로부터 밀명을 받고 귀국하여 영천 지방의 유지인 정도영(鄭島榮)과 협의, 후방 교란과 일제의 무력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대구의 동촌 비행장 폭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1944년 3월 27일 일경에 체포되어 헌병대로 이송되어 8개월에 걸친 가혹한 고문으로 빈사 상태가 되어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그 후유증으로 출옥 후 7일 만에 사망하였다.

[묘소]

정원흥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매곡]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 10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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