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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25
한자 鄭在鎬
이칭/별칭 건중(建仲),춘산(春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1년 2월 7일연표보기 - 정재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정재호 파리장서 작성에 서명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정재호 연통제 함경북도 독판부 기밀경감으로 활동 중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27년 2월 12일 - 정재호 정의부에 가입 항일무장투쟁 전개 중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943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정재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정재호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1년 10월 - 정재호 추모비 건립
출생지 정재호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지도보기
활동지 정재호 - 중국|함경|평안도
묘소 정재호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선산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앙항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영일
대표 경력 연통제 함경도 독판부 기밀경감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재호(鄭在鎬)는 북로군정서와 연통제 및 정의부 요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정재호(鄭在鎬)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건중(建仲), 호는 춘산(春山)이며, 1891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정용우(鄭鏞禹)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용정형무소에서 옥중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정재호(鄭在鎬)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못한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조선의 독립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장서를 작성·서명하였는데, 그는 137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밀 지방 행정 조직인 연통제의 함경도 독판부의 기밀경감에 피임되어 함흥을 무대로 함경도 지방의 정보 수집 및 정부의 명령 전달과 연락 업무를 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1년 6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그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1925년 길림성 화전현에서 결성된 정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4월부터 정의부 검무감 고인섭(高仁燮)과 함께 봉천·개원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일경의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7년 2월 12일 개원성 동문 밖에서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 2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출옥 후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경에 다시 체포되어 3년형의 선고를 받고 용정형무소에 투옥 중 1943년 12월 27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정재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2001년 10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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