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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33
한자 洪鍾顯
이칭/별칭 내문(乃文),치당(痴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1월 3일연표보기 - 홍종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연표보기 - 홍종현 영천 지역의 3·1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홍종현 6·10 만세 운동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77년 1월 20일연표보기 - 홍종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홍종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5년 5월 - 홍종현 추모비 건립
출생지 홍종현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
거주|이주지 홍종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 지도보기
활동지 홍종현 - 영천
묘소 홍종현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신기리 선산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도동공원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남양

[정의]

일제 강점기 영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홍종현(洪鍾顯)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영천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홍종현(洪鍾顯)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내문(乃文), 호는 치당(痴堂)이며, 1890년 지금의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에서 태어나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로 이거하였으며, 1977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홍재복(洪在復)과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나, 생부인 홍재복의 재종형인 홍재호(洪在鎬)의 양자가 되었다.

[활동 사항]

홍종현(洪鍾顯)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홍종현조병진(曺秉鎭) 등과 함께 영천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붉은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4월 12일 오후 3시 30분 경 1천여 명의 장꾼이 모이자 당시 창구동 소재 영천공립보통학교 앞에서 태극기와 독립만세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군중이 호응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마침 순찰 중이던 순사보 김배석(金拜石)에게 체포되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1926년 6월 10일의 융희황제의 국장일(國葬日)에는 숭인동 83번지의 노상에서 혈서를 쓰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으며,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묘소]

홍종현의 묘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신기리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5년 5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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