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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의 효자. 강창언(姜昌彦)은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1811년(순종 원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강우석(姜遇錫), 어머니는 청도 김씨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이달주(李達周)의 딸로, 슬하에 네 아들이 있으니 강재정(姜在廷)·강재하(姜在夏)·강재익(姜在翊)·강재주(姜在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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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세아(鄭世雅)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정세아[1535~1612]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다. 1558년 사마시에 급제해 진사(進士)가 된 후 임진왜란 때 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수복 전투와 경주성 탈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전란이 진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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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현풍 곽씨(玄風 郭氏)는 중국 송나라 관서(關西) 홍농(弘農) 출신으로 고려 인종[1122~1146] 때 한국에 들어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로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진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있다. 곽순(郭珣)의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1502년(연산군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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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권응규(權應奎)의 본관은 안동. 자는 백종(伯宗)이다. 신라 말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는 안동 권씨 후손이다. 1651년(효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지낸 권론(權碖)이 고조이고, 증조는 통덕랑(通德郞) 권성(權偗)이며, 조부는 통덕랑 권석(權䄷)이다. 수직(守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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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김귀희(金貴希)는 김녕 김씨(金寧金氏)로, 자는 희서(希瑞), 호는 노곡(魯谷)이며, 1570년(선조 3) 2월 8일 영천 고경면 논슬(論瑟) 마을에서 태어나 1629년(인조 7) 12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증조 김안일(金雁日) 대부터 영천에 살았으며, 조부는 김암(金巖)이고, 아버지는 김덕해(金德海)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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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석(金錫)으로 고려 초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8세손 김공우(金公瑀) 대에서 크게 번성했는데, 장자 김용비(金龍庇)는 태자첨사(太子瞻事)를, 차자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막내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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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경주 김씨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김완(金浣)은 경주 김씨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의 후손이며, 김을초의 장남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은 김완의 5대조로 영천 입향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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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김응생(金應生)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수(德秀), 호는 명산(明山)이다. 고조는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으로 경주 김씨 영천 입향조이고, 증조는 청풍 부사(淸風府使) 김계돈(金季敦), 조부는 직장(直長) 김장미(金長美)이다. 부친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영릉 참봉(英陵參奉) 김준(金濬)이며, 모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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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김응시(金應時)는 경주 김씨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의 후손이며, 김을초의 장남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이 김응시(金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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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의성 김씨(義城 金氏) 시조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석(金錫)으로 고려 초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기에 그 후손들이 의성 김씨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8세손 김공우(金公瑀) 대에서 크게 번성했는데, 장자 김용비(金龍庇)는 태자첨사(太子瞻事)를, 차자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막내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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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김효달(金孝達)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언(源彦), 호는 석정(石亭)이다. 김효달의 고조는 훈도(訓導) 김두연(金斗年)이며, 증조는 참봉(參奉) 김건(金乾), 조부는 증(贈) 형조 정랑(刑曹正郞) 김대해(金大海)이다. 부친은 김정(金靖)이며, 모친은 월성 정씨(月城鄭氏)로 참봉(參奉) 김광업(金光業)의 딸이다. 첫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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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노기종(盧起宗)의 본관은 광주. 자는 백승(伯承), 호는 지헌(止軒)이다. 고조는 사간(司諫) 노선경(盧善卿)이고, 증조는 영천 입향조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용양위사직(龍驤衛司直) 노탁(盧琢)이며, 조부는 충순위(忠順衛) 노응세(盧應世)이다. 생부(生父)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노준(盧遵)이며, 진사(進士) 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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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노수(盧遂)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소암(小庵) 또는 사곡(沙谷)이며, 1515년(중종 10)에 태어났다. 고조는 성균 생원(成均生員) 노갑생(盧甲生)이고, 증조는 사간(司諫) 노선경(盧善卿)이며, 조부는 광주 노씨 영천 입향조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용양위 사직(龍驤衛司直) 노탁(盧琢)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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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노이옥(盧以鈺)의 본관은 광주. 자는 덕장(德章), 호는 동곡(東谷)이며, 1721년(경종 원년) 10월 12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노철(盧喆)이고, 증조는 노제언(盧悌彦)이며, 조부는 노형원(盧亨遠)이다. 아버지 노수갑(盧壽甲)은 효행(孝行)이 뛰어났으며,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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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의병. 노준(盧遵)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여행(汝行), 호는 지족헌(知足軒)으로 1536년(중종 31) 9월 27일에 태어나 1624년(인조 2) 4월 1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노갑생(盧甲生)이고, 증조는 사간(司諫) 노선경(盧善卿)이며, 조부는 광주 노씨 영천 입향조인 통훈대부(通訓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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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집.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서 정루(亭樓)·정각(亭閣)·정사(亭榭) 라고도 부른다. 평면구조는 정사각형으로부터 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자 형·부채 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직사각형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널리 보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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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하고 전보(田普)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담양 전씨(潭陽田氏)는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 후 좌복야, 참지정사를 역임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진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한다. 재상으로 보필하기도 하고 봉군(封君)과 시호(諡號)를 받기도 하며 세계를 이어온 담양 전씨는 전녹생(田祿生)을 파조로 하는 야은공파(壄隱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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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보(洑)를 막은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대재보는 화북면 옥계리 비집걸마을 앞을 흐르는 고현천에 놓은 조선 시대 보로, 벼농사 등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했다. 옥계리는 화북면소재지가 있는 자천리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비교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마을이다. 비각이 있는 비집걸마을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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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정재달(鄭載達)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서기 32년인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에 6부촌(六部村)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을 받아 경주에서 살게 되니 본관이 경주였는데, 그 뒤 동래(東萊)로 분적(分籍)되었다고 한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 기세조(起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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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에 있는 이순신과 김완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이순신의 부장인 김완(金完)[1546~1607]의 본관은 경주, 자는 언수(彦粹), 호는 사성당(思誠堂)으로, 김응생(金應生)의 셋째 아들이다. 1577년 무과에 급제해 1589년 사도첨사(蛇島僉使)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을 격파한 공로로 절충 장군(折衝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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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손봉석(孫鳳錫)이 후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손봉석[1801~1874]의 본관은 밀양, 자는 주응(周應), 호는 청재(靑齋)이며, 조선 후기 순조 때의 학자로 청재(靑齋)를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동오정(東塢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학리 입구의 학등(鶴嶝)에 있다. 영천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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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규양(鄭葵陽)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규양[1667~173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며, 형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과 함께 부친이 돌아가신 후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과 우애로 여생을 보내며 영의정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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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孫順)을 시조로 하고 손순조(孫順祖)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신라 시대 효성의 감응으로 석종(石鐘)의 이적(異蹟)을 얻은 문효공(文孝公) 손순을 시조로 하는 밀양 손씨는 후대 손빈(孫贇)에 이르러 조적(曹頔)의 난을 토평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오르고 밀성군(密城君)에 책봉되었으며, 영천 입향조는 헌릉참봉(獻陵參奉) 손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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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임진왜란 때 학자인 정대임(鄭大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정대임[1553~1594]의 본관은 영일,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이다.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의병대장에 올라 영천성 복성 전투, 경주·예천 등지에서 큰 전공을 세웠는데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후 정대임은 호조참판(戶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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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정봉휴(鄭鳳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봉휴의 본관은 영일. 호는 곡구(谷口)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매산 정중기의 증손자이며, 숙제(叔弟)인 향양정 정귀휴(鄭龜休)와 가깝게 지냈다. 매곡마을에 정자를 건립하고 장수(藏修)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매곡마을은 영천의 3대 양택지로 손꼽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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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무인 손만진(孫萬禛)이 거처하던 정자. 손만진[1639~1699]의 본관은 밀양, 자는 회응(會應), 호는 삼성재(三省齋)이며,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합격해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낙향해 모재(茅齋)에 ‘삼성(三省)’이라 편액하고 효행과 학문을 닦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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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호신(鄭好信)이 위해 건립한 정자. 정호신[1605~1649]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이며, 할아버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가 살았던 삼귀리에 ‘삼휴’라는 시를 짓고 정자를 삼휴정이라 했다. 저서로는 『삼휴일고(三休逸稿)』가 전하며, 영천시 고경면 초일리에 묘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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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손한추(孫漢樞)를 위해 손한기(孫漢機)가 지은 정자. 손한추[1664~1712]의 본관은 밀양, 자는 두일(斗一), 호는 지헌(芝軒)이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효도와 우애 그리고 문학으로 이름을 알렸다. 저서로는 『지헌집(芝軒集)』이 전하고 묘소는 고경면 파계리에 있다. 아우 손한기[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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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숙원(徐叔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공계(公季), 호는 채운(採雲)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으로 시조 서진의 증손이다. 증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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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옥(徐沃)은 본관은 이천. 자는 관부(灌夫), 호는 추암(秋庵)이다. 고조는 참군(參軍) 서건손(徐建孫)이며, 증조는 부사맹(副司猛) 서승(徐繩), 조부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영천교수(永川敎授) 서백령(徐百齡)이니 영천 입향조이다. 서옥의 아버지는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서자이(徐自邇)이며, 어머니는 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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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용원(徐勇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공의(公義)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이니 시조 서진의 증손이다. 증조는 귀계(龜溪)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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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여생을 보낸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자이(徐自爾)의 자는 원지(遠之), 호는 심계(心溪)이다. 고조는 부사(府使) 서극인(徐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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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서지원(徐智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공량(公良)이며 1456년(세조 2)에 태어나 1507년(중종 2)에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으로 시조 서진의 증손이며, 증조는 귀계(龜溪) 서침(徐沉), 조부는 승사랑(丞仕郞) 광흥창(廣興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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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이량(成以諒)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정(汝貞), 호는 송암(松庵)이며, 1586년(선조 19)에 태어나 1654년(효종 5) 1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성영준(成永俊)이며,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성열(成烈), 조부는 선무랑(宣務郞) 성익수(成益壽)이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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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이직(成以直)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방(汝方), 호는 경재(敬齋)이다. 고조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의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성영준(成永俊)이며,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성열(成烈), 조부는 선무랑(宣務郞) 성익수(成益壽)이다. 임진왜란 때 곽망우당(郭忘憂堂)의 의진에 참전하였던 아버지 성립(成立)과 참봉 신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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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하구(成夏耉)의 본관은 창녕. 자는 방언(邦彦), 호는 죽오(竹塢)이며, 1669년(현종 10)에 거현촌(莒峴村)에서 태어나 1740년(영조 16) 8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선무랑(宣務郞) 성익수(成益壽)이고, 증조는 임진왜란 때 곽망우당(郭忘憂堂)의 의진에 참전한 성립(成立)이며, 조부는 진사(進士)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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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학진(成鶴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서우(瑞羽), 호는 맥옹(麥翁)이다. 고조는 성창직(成昌職)이며, 증조는 성세형(成世衡), 조부는 성만운(成萬運)이다. 생부는 성주도(成周度)이며, 모친은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조처구(曺處九)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조병용(曺秉鎔)의 딸이며, 슬하에 2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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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헌조(成憲祖)의 본관은 창녕. 자는 술초(述初), 호는 송재(松齋)이며, 1695년(숙종 21)에 태어났다. 고조는 임진왜란 때 곽망우당(郭忘憂堂)의 의진에 참전한 성립(成立)이고, 증조는 진사(進士) 성이량(成以諒)이며, 조부는 강제훈장(講制訓長)을 지낸 성경(成暻)이다. 아버지는 성하구(成夏耈)이고, 어머니 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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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학리에 있는 전보(田普)를 향사키 위해 세웠던 소계서원 관련 유허비 및 비각. 소계서원은 영천 지주사로 부임해 선정을 베푼 전보를 향사키 위해 세웠다. 그러나 서원이 훼철되자 영천시 청통면 신학리에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 전보[1370~1435]의 자는 광화(光華), 호는 송강(松江)으로 담양 전씨 영천 입향조이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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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손덕침(孫德沈)의 본관은 밀양. 자는 사원(士源), 호는 모헌(慕軒)이며, 1537년(중종 32)에 태어나 1596년(선조 29) 12월 16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천 입향조(入鄕祖) 손순조(孫順祖)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증조는 현감(縣監) 손후륜(孫厚倫), 조부는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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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손만진(孫萬 示+眞)의 본관은 밀양. 자는 회응(會應), 호는 삼성재(三省齋)이며, 1639년(인조 17) 3월 5일에 태어나 1699년(숙종 25) 11월 26일 사망하였다. 고조는 참봉(參奉) 손주(孫冑)이며, 증조는 참의(參議)에 추증된 손덕침(孫德沈), 조부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손상운(孫祥雲), 아버지는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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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손서륜(孫敍倫)은 밀양 손씨(密陽孫氏)로 증조는 양성 현감(陽城縣監) 손을상(孫乙相)이며, 조부는 부여 현감(夫餘縣監) 손문례(孫文禮)이다. 아버지는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손순조(孫順祖)이고, 어머니는 영양 이씨(永陽李氏)[영천(永川) 이씨] 사직(司直) 이현실(李玄實)의 딸로 대제학(大提學) 이석지(李釋之)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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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에 있는 손석후·손만지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손석후(孫錫後)[1613~?]와 손만지(孫萬祉)[1631~1703]는 밀양인으로 고경면 용전리 추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손석후가 일찍 죽어 후사가 없기에 형의 둘째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손석후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하늘에 기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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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손주(孫胄)의 본관은 밀양. 자는 백로(伯老), 호는 노암(老巖)이며, 1491년(성종 27) 태어나 1552년(명종 7) 12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부여현감(夫餘縣監) 손문례(孫文禮)이며, 증조는 영천 입향조(入鄕祖) 손순조(孫順祖)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조부 손후륜(孫厚倫)과 아버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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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학자. 손한기(孫漢機)의 본관은 밀양. 자는 두삼(斗三), 호는 국포(菊圃)이며, 1668년(현종 9) 11월 5일에 태어나 1745년(영조 21) 11월 29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의(參議)에 추증된 손덕침(孫德沈), 증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손상운(孫祥雲)이며, 조부는 선교랑(宣敎郞) 손봉후(孫奉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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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학자. 손한추(孫漢樞)의 본관은 밀양. 자는 두일(斗一), 호는 지헌(芝軒)이며, 1664년(현종 5)에 태어났다. 고조는 참의(參議)에 추증된 손덕침(孫德沈), 증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손상운(孫祥雲)이며, 조부는 선교랑(宣敎郞) 손봉후(孫奉後)이다. 아버지는 손만정(孫萬禎)이며, 어머니는 생원(生員) 조함세(趙咸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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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경설(安景說)의 본관은 광주. 자는 은노(殷老), 호는 신암(愼庵)이며, 1712년(숙종 38) 11월 21일에 태어나 1779년(정조 3) 11월 6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증(贈) 판결사(判決事) 안명한(安鳴漢)이며, 증조는 안세영(安世英), 조부는 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 안후정(安后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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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전(安琠)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가(待可)이다. 고조는 사간(司諫) 안구(安覯), 증조는 좌랑(佐郞) 안증(安嶒)이니 영천 입향조이며, 조부는 안종경(安宗慶)이다. 부친은 안광소(安光韶)이며, 모친은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의인(宜人) 월성 최씨(月城崔氏)로 좌랑(佐郞) 최겸(崔謙)의 딸이며, 슬하에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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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안씨(廣州安氏)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 안증(安嶒)[1494~1553]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고조는 안강(安崗)이며, 증조는 전옥서(典獄署) 주부(主簿) 안숙양(安叔良), 조부는 인의(引儀) 안보문(安普文)이다. 아버지 사간(司諫) 안구(安覯)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도이며, 어머니 진도 김씨(珍島金氏)는 사정(司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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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후정(安后靜)의 본관은 광주. 자는 군경(君敬), 호는 성재(省齋)이며, 1659년(효종 10) 도동리(道東里)[현 영천시 도남리]에서 태어나 1702년(숙종 28) 10월 18일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안광소(安光韶)이며, 증조는 감찰(監察) 안전(安琠), 조부는 증(贈) 판결사(判決事) 안명한(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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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황보성(皇甫星)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황보성[1700~1756 추정]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우(景虞)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효자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나라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이란 증직을 내렸다. 어머니 영양 이씨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한 것으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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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정광후(鄭光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한 정광후(鄭光厚)가 영천 지역에 입향하였다. 정광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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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중기(鄭重器)의 살림집과 그의 별서. 정중기[1685~1757]의 본관은 영일.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으로 조선 후기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의 문하에 종유했다. 1715년 사마시에 합격한 후 1728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1756년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올랐다. 저서로는 『매산집(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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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윤절생(尹切生)을 시조로 하는 성씨. 영천 윤씨(永川尹氏)는 고려 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윤절생을 시조로 하며, 4세(世) 윤승관(尹承琯)이 문과(文科)에 장원급제를 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고 고울백(高鬱伯)[영천의 옛 명칭]에 봉해져 문도(文度)라는 시호를 받음으로 해서 영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많은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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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는 성씨. 최씨(崔氏)의 원조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전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어 신라 말에서 고려 중엽의 인물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계통이 자세하게 전하는 본으로는 경주(慶州)·전주(全州)·해주(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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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호신(鄭好信)의 주택. 정호신[1605~1649]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이며, 임진왜란 때 영천·경주 등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세아(鄭世雅)의 손자이며, 역시 정세아와 함께 공을 세운 아들 정수번(鄭守藩)의 셋째 아들이다. 정수번은 아들인 정호신을 분가시키면서 이 주택인 오회공 종택(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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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석현(鄭碩玄)이 건립한 정자. 정석현[1656~1730]의 본관은 영일, 자는 지원(志遠), 호는 오회당(五懷堂)이며, 삼휴정(三休亭) 정호신(鄭好信)[1605~1649, 자 덕기(德基)]의 손자로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이형상(李衡祥)·정중기(鄭重器)·정간(鄭榦) 등 당시 명망있는 선비들과 교우했다. 집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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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만양과 정규양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영일 정씨(迎日鄭氏) 후손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이며, 아우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함께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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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광주 안씨(廣州安氏) 영천 입향조인 안증(安嶒)을 위해 건립한 정자. 안증[1494~1553]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안증은 조선 전기 중종 때 학자로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성리학]에만 전념했다. 후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사서(司書)가 되어 후에 인종에게 민본사상을 주창했지만 실패했다. 또 을사사화로 인해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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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윤긍(尹兢)의 본관은 영천, 초명(初名)은 윤흠(尹欽), 자는 경부(敬夫), 호는 죽재(竹齋),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고조는 장군존혁하수정(將軍存奕下隧正) 윤득후(尹得候)이며, 증조는 한림지제고(翰林知制誥) 윤수태(尹壽台), 조부는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와 낙안 군수(樂安郡守)를 지낸 윤순(尹淳)이다. 아버지는 오위도총부 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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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윤담(尹聃)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미수(眉叟), 호는 지곡(止谷)이다. 고조는 이조 참의(吏曹參議) 윤긍(尹兢)이며, 증조는 충무위 중부 부사직(忠武衛中部副司直) 윤무형(尹畝亨), 조부는 돈용 교위(敦勇校尉) 강예원 습독관(講隸院習讀官) 윤찬(尹贊)이다. 부친은 순릉 참봉(順陵參奉) 윤원좌(尹元佐)이며, 모친은 단인(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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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녕 현감을 지낸 윤명운(尹明運)의 불망비. 윤명운[1642~1718]은 본관 파평, 자는 여회(汝會)이다. 조선 숙종 26년 경진년(1700)에 의금부도사로 재직하다 외직으로 나와서 경상도 신녕현의 수령[현감]이 되었다. 신녕 현감으로서 탁월한 업적이 있어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그 은덕을 추모하였다. 윤명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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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윤빙(尹聘)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신수(莘叟), 호는 송파(松坡)이다. 고조는 이조 참의(吏曹參議) 윤긍(尹兢)이며, 증조는 충무위 중부 부사직(忠武衛中部副司直) 윤무형(尹畝亨), 조부는 돈용 교위(敦勇校尉) 강예원 습독관(講隸院習讀官) 윤찬(尹贊)이다. 부친은 순릉 참봉(順陵參奉) 윤원좌(尹元佐)이며, 모친은 단인(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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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윤종선(尹從善)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등(慶登)이며, 1573년(선조 6) 1월 26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충무위중부부사직(忠武衛中部副司直) 윤무형(尹畝亨)이고, 증조는 돈용교위(敦勇校尉) 강예원습독관(講隸院習讀官) 윤찬(尹贊), 조부는 순릉참봉(順陵參奉) 윤원좌(尹元佐)이다. 아버지는 증(贈) 이조참의(吏曹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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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윤찬(尹贊)의 본관은 영천. 호는 옥당(玉堂)이며, 고조는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와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낸 윤순(尹淳), 증조는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官) 윤헌(尹憲), 조부는 이조참의(吏曹參議) 윤긍(尹兢)이다. 부친은 충무위중부부사직(忠武衛中部副司直) 윤무형(尹畝亨)이며, 모친은 공인(恭人) 대구 서씨(大邱 徐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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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윤천각(尹天覺)의 본관은 영천. 자는 여선(汝先), 호는 영빈(穎濱)이며, 1710년(숙종 36) 9월 10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윤석린(尹石麟)이며, 증조는 윤응삼(尹應三), 조부는 윤상뢰(尹商賚)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윤함(尹諴)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박계세(朴繼世)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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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윤효각(尹效覺)은 본관은 영천. 자는 복초(復初), 호는 정암(正庵)·침천재(枕泉齋)이다. 고조는 윤은보(尹殷保)이며, 증조는 윤명삼(尹命三), 조부는 윤혜갑(尹惠甲)이다. 아버지는 윤학신(尹學莘)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로 성도수(成道洙)의 딸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경주 김씨(慶州 金氏)로 통덕랑(通德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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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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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이자, 영천 이씨의 중시조.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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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당한 이보흠(李甫欽)의 유허비. 이보흠[1397~1457]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다. 1429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가 된 후 1457년 순흥 부사(順興府使)로 재임 중 순흥에 유배와 있던 금성 대군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었다. 평안도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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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득봉(李得鳳)의 본관은 벽진. 자는 성서(聖瑞), 호는 귀촌(歸村)이며, 1573년(선조 계유)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고 12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경력(經歷) 이진산(李震山)이며, 증조는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 이팽조(李彭祖)이니 칠곡 월오(月塢)에서 영천시 고경면 추곡리로 이거(移居)하여 후손이 세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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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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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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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수겸(李守謙)은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碧珍李氏)로 고조는 생육신(生六臣) 이맹전(李孟專)이며, 증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대구교수(大丘敎授) 이순(李恂), 조부는 장사랑(將仕郞) 이배원(李培源)으로 영천 입향조이다. 부친은 장사랑(將仕郞) 이의(李椅), 모친은 계림 박씨(鷄林 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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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문인. 이안유(李安柔)의 본관은 영천, 자는 이립(而立), 호는 서파(西坡)이다. 고조는 보승호군(保勝護軍) 이문경(李文卿)이며, 증조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송현(李松賢), 조부는 경덕재생(經德齋生)으로 추봉(追封)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석지(李釋之)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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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의(李椅)는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 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후손으로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다. 고조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이심지(李審之)이며, 증조는 생육신(生六臣) 이맹전(李孟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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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서백령(徐百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는 신라의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로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지어 후진 교육에 여생을 보냈으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는 서백령(徐百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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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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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호대(李好大)의 본관은 전주. 자는 내문(乃門), 호는 중재(中齋)로, 1901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천곡(泉谷)에서 태어나 1981년 1월 29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정보(李廷輔)이며, 증조는 이인하(李仁夏)이니 영천시 청통면 후평(後坪)에 처음 옮겨 살았고, 조부는 이창우(李昌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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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후(李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재(善載), 호는 낭산(朗山)이며, 1870년(고종 7) 10월 26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천곡(泉谷)에서 태어나, 1934년 1월 11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증조는 이정보(李廷輔)이며, 조부는 이인하(李仁夏)이니 현재의 영천시 청통면 후평(後坪)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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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희백(李喜白)의 자는 백진(白眞), 호는 대암(臺嵒)이며, 1548년(명종 3)에 태어나 1608년(광해군 원년) 11월 23일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로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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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정간(鄭榦)의 본관은 영일. 초명(初名)은 정권(鄭權), 자는 도중(道中), 호는 명고(鳴皐)이다. 증조는 정원호(鄭元護)이고, 조부는 정세진(鄭世振)이며, 아버지는 정사징(鄭思徵)인데, 정간의 공적으로 인해 각각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좌승지(左承旨),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증(贈) 정부인(貞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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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나주, 자는 술지(述之), 호는 농고(聾皐)이다. 고조는 정남규(丁南奎)이며, 증조는 정시대(丁始大), 조부는 정태언(丁台彦)이다. 아버지는 정주한(丁周翰)이며, 어머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로 이종근(李宗根)의 딸이다. 부인은 양산 이씨(陽山 李氏)로 이중원(李重源)의 딸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정석호(丁錫浩)와 정재성(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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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강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강지(矼之)이며, 고조는 사정(司正) 정위(鄭瑋), 증조는 영산 유학 교도(靈山儒學敎導) 정문예(鄭文裔), 조부는 좌랑(佐郞) 정치소(鄭致韶)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이상(鄭以常)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승정원 정(承政院正) 박영손(朴英孫)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 이씨(慶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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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영천시 도동]에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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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정굉(鄭硡)의 본관은 영일. 자는 굉지(宏之)이며, 1492년(성종 23)에 태어나 1528년(중종 23) 3월 15일에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사정(司正) 정위(鄭瑋), 증조는 영산유학교도(靈山儒學敎導) 정문예(鄭文裔), 조부는 좌랑(佐郞) 정치소(鄭致韶)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이상(鄭以常)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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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귀휴(鄭龜休)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경서(景書), 호는 향양정(向陽亭)이다. 고조는 정석달(鄭碩達)이며, 증조는 형조 참의(刑曹參議) 정중기(鄭重器), 조부는 정일찬(鄭一鑽)이다. 부친은 정하란(鄭夏瀾)이며, 모친은 광주 이씨(廣州 李氏)로 이항중(李恒中)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 강씨(晋陽姜氏)로 강백의(姜百懿)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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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일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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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기휴(鄭基休)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노(敬老)이며, 1828년(순조 28) 11월 20일에 태어나 1869년(고종 6) 3월 21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석륜(鄭碩倫)이며, 증조는 정중진(鄭重珍), 조부는 정일린(鄭一鏻)이다. 부친은 정하규(鄭夏珪)이며, 모친은 해주 최씨(海州 崔氏)로 최광(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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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정대임(鄭大任)[1553~1594]의 본관은 영일,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이며 1553년(명종 8) 6월 4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훈도(訓導) 정의소(鄭依韶)이며, 증조는 정이숙(鄭以淑), 조부는 정윤담(鄭允淡)이다. 아버지는 정용(鄭容)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로 증(贈) 참의(參議) 김응생(金應生)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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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도영(鄭島榮)의 본관은 영일. 초명(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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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만양(鄭萬陽)의 자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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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몽양(鄭夢陽)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헌길(獻吉),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다. 고조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정안번(鄭安藩)이며, 증조는 부사(府使) 정호인(鄭好仁), 조부는 정시행(鄭時行)이다. 부친은 진사(進士) 정석주(鄭碩冑)이며, 모친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생원(生員) 김방열(金邦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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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정문예(鄭文裔)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 후손이다.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판도판서(奉翊大夫行版圖判書)인 정림(鄭林), 증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 조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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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일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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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정사상(鄭四象)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여섭(汝燮), 호는 우헌(愚軒)이며, 1563년(명종 18) 11월 15일에 태어나 1623년(광해군 15) 6월 17일에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봉(參奉) 정문영(鄭聞英), 증조는 훈도(訓導) 정세홍(鄭世弘), 조부는 생원(生員) 정거(鄭琚)이다. 아버지는 거창 현감(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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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정사진(鄭四震)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군섭(君燮), 호는 수암(守庵)이며, 1567년(명종 22) 8월 20일에 현재의 경산시(慶山市) 자인면(慈仁面)에서 태어났고, 1616년(광해군 8) 6월 21일에 병으로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봉(參奉) 정문영(鄭聞英), 증조는 훈도(訓導) 정세홍(鄭世弘), 조부는 생원(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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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정삼변(鄭三變)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전(德全), 호는 죽애(竹崖)이다. 정삼변의 고조는 진의부위(進義副尉) 정경치(鄭卿緇)이고, 증조는 참봉(參奉) 정문영(鄭聞英)이며, 조부는 훈도(訓導) 정세홍(鄭世弘)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거(鄭琚)이며, 어머니는 의인(宜人) 인천 채씨(仁川 蔡氏)로 찰방(察訪)을 지낸 채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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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일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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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신.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석임(鄭碩臨)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여대(汝大), 호는 월송재(月松齋)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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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석조(鄭碩祖)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여승(汝承)이다. 고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며, 증조는 증(贈) 호조정랑(戶曹正郞) 정의번(鄭宜藩), 조부는 해남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정시교(鄭時僑)이며, 어머니는 월성 최씨(月城 崔氏)로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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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석현(鄭碩玄)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지원(志遠), 호는 오회당(五懷堂)이다. 고조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며,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정수번(鄭守藩), 조부는 정호신(鄭好臣)이다. 부친은 부사과(副司果) 정시우(鄭時羽)이며, 모친은 숙인(淑人)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구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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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세아(鄭世雅)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고, 1535년(중종 30)에 태어났다. 고조는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 조부는 정차근(鄭次謹)이다. 아버지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어머니는 의인 최씨(宜人崔氏)로 봉사(奉事) 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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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수번(鄭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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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시간(鄭時衎)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며, 1635년(인조 13) 5월 17일에 태어나 1690년(숙종 16) 12월 12일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창릉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증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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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츌신의 무인. 정시심(鄭時諶)의 본관은 영일. 자는 노경(老卿)이다. 고조는 창릉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 증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 조부는 증(贈) 호조정랑(戶曹正郞) 정의번(鄭宜藩)이다. 아버지는 해남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며, 어머니 순천 박씨(順天 朴氏)는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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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시창(鄭時昌)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순(德順)이며, 1634년(인조 12) 8월 28일에 태어나 1680년(숙종 6) 4월 19일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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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신도(鄭信道)의 본관은 영일. 자는 돈부(敦夫)이다. 고조는 생원(生員) 정이상(鄭以常)이고, 증조는 참봉(參奉)으로 증(贈) 좌통례(左通禮)에 제수된 정강(鄭矼)이며, 조부는 증(贈) 승지(承旨) 정예개(鄭禮槩)이다. 아버지는 증(贈) 병조참의(兵曹參議) 정희윤(鄭熙胤)이며, 어머니는 양산 이씨(陽山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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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억(鄭嶷)의 본관은 영일(迎日). 고조는 장수도 찰방(長水道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직장(直長) 정차순(鄭次諄), 조부는 참봉(參奉) 정호(鄭灝)이다. 아버지 어모장군(禦侮將軍) 정경희(鄭景禧)이며, 어머니는 고령 김씨(高靈 金氏)로 김명견(金命堅)의 딸이다. 아우 정잠(鄭岑)도 지극한 효성으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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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유곤(鄭裕昆)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덕부(德夫), 호는 만오(晩悟)이다. 고조는 정석달(鄭碩達)이며, 증조는 통덕랑(通德郞) 정일빈(鄭一鑌), 조부는 정하온(鄭夏溫)이다. 아버지는 정경휴(鄭景休)이며, 어머니는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유빈(柳濱)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권동기(權東箕)의 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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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 공조판서(嘉善大夫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유목(鄭裕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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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유영(鄭裕榮)의 본관은 영일. 자는 계인(季仁), 호는 만졸당(萬拙堂)이며, 1793년(정조 17) 3월 15일 임고면(臨皐面) 평천리(平泉里)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통사랑(通仕郞) 정중선(鄭重善)이며, 증조는 정일진(鄭一鎭), 조부는 정하준(鄭夏浚)이다. 아버지는 정복휴(鄭復休)이며, 어머니는 재령 이씨(載寧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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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 공조판서(嘉善大夫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유준(鄭裕俊)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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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윤량(鄭允良)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원좌(元佐), 호는 노촌(魯村)이며, 1515년(중종 10) 현재의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노항촌(魯巷村)에서 태어나 1580년(선조 13)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산 유학 교도(靈山儒學敎導) 정문예(鄭文裔)이고, 증조는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이며, 조부는 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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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응서(鄭應瑞)의 본관은 영일. 자는 군길(君吉), 호는 학남(鶴南)이다. 고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차성(鄭次誠)이니 신녕(新寧) 고을로 이거하였다. 조부는 정윤온(鄭允溫)이며, 아버지는 정언침(鄭彦琛)이니 양대 모두 침랑(寢郞) 벼슬을 하였다. 어머니는 대구 배씨(大邱 裵氏)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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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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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의 노비. 임진왜란 때 영천 지역의 의병들은 영천성 탈환의 여세를 모아 경주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정의번은 늘 앞장서서 적을 공격했고, 그의 종 억수는 충실히 주인을 보필했다. 그러나 적군이 기병을 투입하여 아군의 뒤쪽을 공격하고, 앞쪽에 매복했던 병사들이 일시에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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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의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각. 정의번(鄭宜藩)[1560~159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柏巖)으로 정세아(鄭世雅)의 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박소’에서 권응수와 정대임이 승리하는데 앞장섰고, 아버지 호수 정세아와 함께 의병[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복성(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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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이교(鄭以僑)의 본관은 영일. 자는 자미(子美),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며, 1498년(연산군 4) 12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고조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인데 이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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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무인. 정인개(鄭仁槩)의 본관은 영일. 자는 원직(元直)이며, 1522년(중종 17) 11월 5일에 태어나 1590년(선조 23) 12월 26일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산유학교도(靈山儒學敎導)를 지낸 정문예(鄭文裔)이고, 증조는 좌랑(佐郞)을 지낸 정치소(鄭致韶)이며, 조부는 생원(生員) 정이상(鄭以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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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일전(鄭一銓)의 본관은 영일(迎日)이고, 자는 공택(公擇), 호는 축와(縮窩)이다. 고조는 정호신(鄭好臣)이며, 증조는 부사과(副司果) 정시우(鄭時羽), 조부는 정석현(鄭碩玄)이다. 부친은 정중주(鄭重周)이며, 모친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참봉(參奉) 권득여(權得輿)의 딸이다. 부인은 풍천 임씨(豊川任氏)로 임명천(任命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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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일진(鄭一鎭)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안중(安仲), 호는 학고(鶴皐)이다. 고조는 해남 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며, 증조는 종사랑(從仕郞) 정시교(鄭時僑), 조부는 선전관(宣傳官) 정석조(鄭碩祖)이다. 부친은 정중선(鄭重善)이며, 모친은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조문하(曺文夏)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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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일찬(鄭一鑽)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학여(學如), 호는 죽비(竹扉)이며 고조는 해남 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며, 증조는 전주 영장(全州營將) 정시심(鄭時諶), 조부는 정석달(鄭碩達)이다. 부친은 형조참의(刑曹參議) 정중기(鄭重器)이며, 모친은 문소 김씨(聞韶 金氏)로 통덕랑(通德郞) 김방겸(金邦謙)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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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정호의(鄭好義)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호의[1602~1655]의 본관은 영일, 자는 자방(子方), 호는 명계(明溪)이며, 할아버지 정세아(鄭世雅)와 장인 전삼성(全三省)의 영향을 받아 견식이 넓어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는 『명계일고(明溪逸稿)』가 전하고, 자양면 성곡리에 묘소가 있다. 정호의는 학문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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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제(鄭梯)의 본관은 동래. 자는 가승(可升), 호는 남창(南窓)이며, 1689년(숙종 15) 8월 2일에 영천시 명산동(鳴山洞)에서 태어나 1765년(영조 41) 1월 4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양보(鄭良輔)이며, 증조는 정이호(鄭以護), 조부는 정세무(鄭世武)이다. 아버지는 정사제(鄭思齊)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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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정종소(鄭從韶)의 본관은 영일, 자는 가정(可貞)이다.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이고, 증조는 영일 정씨 영천 입향조인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이고, 조부는 사정(司正)을 지낸 정위(鄭瑋)이다. 아버지 정문예(鄭文裔)는 생원(生員)으로 영산유학교도(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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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중기(鄭重器)의 본관은 영일.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이며, 1685년(숙종 11) 2월 22일에 태어나 1757년(영조 33) 7월 8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증(贈) 호조 정랑(戶曹正郞) 정의번(鄭宜藩), 증조부 해남 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 조부는 전주 영장(全州營將)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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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차성(鄭次誠)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신부(愼夫), 호는 화은(華隱)이다. 고조는 사정(司正) 정위(鄭瑋)이며, 증조는 영산 유학 교도(靈山儒學敎導) 정문예(鄭文裔), 조부는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정이휘(鄭以揮)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춘천 박씨(春川朴氏)로 박효전(朴孝佃)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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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정천리(鄭千里)의 본관은 영일. 초명은 찬(讚), 자는 양지(揚之), 호는 원호(遠湖)이고, 1548년(명종 3)에 태어났다. 고조는 정광후(鄭光厚) 현손인 정이은(鄭以殷)이고, 증조는 수직(壽職) 호군(護軍) 정흥인(鄭興仁)이며, 조부는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 정귀달(鄭貴達)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병조 참의(兵曹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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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정치소(鄭致韶)는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이고, 증조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인데, 이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조부는 사정(司正) 정위(鄭瑋)이고, 아버지 정문예(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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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정호례(鄭好禮)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립(子立), 호는 요산(樂山)이며, 1604년(선조 37) 1월 7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정차근(鄭次謹)이고, 증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조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다. 생부는 부호군(副護軍) 정수번(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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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호신(鄭好信)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이며, 1605년(선조 38) 11월 4일에 현재의 영천시 명산동(鳴山洞)에서 태어나 1649년(인조 27) 11월 13일에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차근(鄭次謹), 증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 조부는 병조 판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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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호의(鄭好義)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명계(明溪)이며, 1602년(선조 35) 1월 1일에 현재의 영천시 명산동(鳴山洞)에서 태어나 1655년(효종 6) 4월 10일에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차근(鄭次謹), 증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 조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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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호인의 본관은 영일. 자는 자견(子見), 호는 양계(暘溪)이며, 1597년(선조 30) 8월 19일에 태어나 1655년(효종 6) 7월 11일에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차근(鄭次謹)이고, 증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조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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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조종대(趙宗岱)는 한양 조씨(漢陽趙氏)로,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영천으로 입향한 정릉 참봉(定陵參奉) 조문림(趙文琳)이 고조이다.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조임(趙恁)이고, 조부는 참봉 조원서(趙元緖)이며, 아버지는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조침(趙忱), 어머니는 수원 김씨(水原金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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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조종악(趙宗岳)은 한양 조씨(漢陽趙氏)로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영천으로 입향한 정릉 참봉(定陵參奉) 조문림(趙文琳)이 고조이다.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조임(趙恁)이고, 조부는 참봉 조원서(趙元緖)이며, 아버지는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조침(趙忱)이다. 어머니는 수원 김씨(水原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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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에 있는 성하구(成夏耈)의 장수지소(藏修之所). 성하구[1669~1740]는 조선 숙종 때 학자로 본관은 창녕. 자는 방언(邦言), 호는 죽오(竹塢)이다. 성하구는 창녕 성씨 영천 입향조인 성영준(成永俊)의 6세손이며,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으로 전심으로 성리학을 닦고 고명한 학문과 지극한 행실로 세상의 추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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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이며, 화약 발명가.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현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무선(崔茂宣)의 본관은 영주(永州)[영천]. 고조는 시조 최한의 손자인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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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 최무선(崔茂宣)이 제조한 무기. 화포(火砲)의 역사는 고려 말 최무선의 화약 제조 성공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화약이 발명된 이후에 ‘대형 총통 속에 화약을 넣고 돌덩이를 쏘는 포’라는 뜻으로 화약을 이용하는 모든 포를 화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인 최무선은 고려 말 무신으로서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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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지금의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한다. 최벽남(崔壁南)의 본관은 영천. 자는 천약(天若)이다. 고조는 충순위(忠順衛) 최윤정(崔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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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의 대인(大人)이다.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지금의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용화(崔龍和)의 본관은 영천. 고조는 4세(世) 봉익대부(奉翊大夫) 전호위상호군(典護衛上護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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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최원도(崔元道)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백상(伯常), 호는 천곡(泉谷)이다. 최원도의 고조는 4세(世) 봉익대부(奉翊大夫) 전호위상호군(典護衛上護軍) 최승주(崔承澍)이며, 증조는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좌우위 보승랑(左右衛保勝郞) 최윤기(崔允琪), 조부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사온령 동정(司溫令同正) 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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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이자 의병장. 최응사(崔應泗)는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효원(孝源), 호는 유정(柳亭)이며, 1520년(중종 15) 5월에 태어나 1612년(광해군 4) 1월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최억년(崔億年)이며,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최윤정(崔潤汀), 조부는 별시위(別侍衛) 최효분(崔孝汾)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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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池鏡)을 시조로 하고 지달기(池達沂)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충주 지씨(忠州池氏)는 중국 송나라 태학사로 고려 광종(光宗) 때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태보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保平章事)에 이르고 선의(善懿)라는 시호를 받은 지경을 시조로 하고, 5세(世) 지종해(池宗海)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충주(忠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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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시간(鄭時衎)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시간[1635~1690]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1669년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자양(紫陽)의 구계산(龜溪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술을 좋아해 당호를 취성당이라 했다. 저서로는 『취성당일고(醉醒堂逸稿)』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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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락(黃洛)을 시조로 하고, 황중신(黃中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평해 황씨(平海黃氏)는 한(漢)나라 유신(儒臣)으로 신라 시대 폭풍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정착한 황락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후손 황갑고(黃甲古)[기성군], 황을고(黃乙古)[장수군], 황병고(黃丙古)[창원백] 3형제 중 큰아들 황갑고(黃甲古)의 후손이 평해 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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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서유대(徐惟岱)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서유대[1761~1822]의 본관은 달성, 자는 맹담(孟澹)이고 호는 학와(壑窩)로 장인인 몽암 정희(鄭熺)에게서 수학했다. 만년에 풍호정(風乎亭)을 건립해 은거하면서 수양했다. 풍호정의 당호는 남와(南窩) 정동필(鄭東弼)[1740~1820]이 지었고 기문은 남려(南廬) 이정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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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룡동에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수눌·이수겸·이수인 삼형제를 기리기 위해 아들 이희백이 건립한 정자. 이수겸(李守謙)[1526~1611]의 본관은 벽진, 자는 양중(讓中), 호는 장계(獐溪)이다.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의 4세손으로 조호익(曺好益)과 교우했으며, 대구교수사부학당교수(大丘敎授四部學堂敎授)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서관판교(校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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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귀휴(鄭龜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귀휴[1786~1852]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서(景書), 호는 향양정(向陽亭)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양정(向陽亭)을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귀휴의 저서로는 『향양정유고(向陽亭遺稿)』가 전한다.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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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52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해남 현감 정호례(鄭好禮)가 지은 살림집. 정호례[1604-1672]의 자는 자립(子立), 호는 요산(樂山)이며,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듬해 봄 어머니 상을 당하여 고향에 돌아와 상제(喪制)를 마치고 선전관(宣傳官)으로 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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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호연사 유허지에 있는 비와 비각. 호연사(虎淵祠)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인 안증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안증은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에 김종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에만 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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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금호강 변에 조선 후기의 학자 이형상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 또는 순옹(順翁)이다. 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1677년 사마시에 장원으로 진사(進士)가 된 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성주·금산·청주·양주·제주·경주 등 많은 고을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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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황보성(皇甫星)은 고려 초 상장군(上將軍)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후손이다. 5대조 황보덕(皇甫德)이 장기(長鬐)[포항시 장기면]에서 영천으로 이주하였으며, 고조는 황보령(皇甫齡), 증조는 황보남(皇甫楠), 조부는 황보익(皇甫益), 아버지는 황보탈(皇甫侻)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 영양군(永陽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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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평해 황씨(平海 黃氏)는 한(漢)나라 유신(儒臣)으로 신라 시대 폭풍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정착한 황락(黃洛)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후손 황갑고(黃甲古)[기성군], 황을고(黃乙古)[장수군], 황병고(黃丙古)[창원백]의 3형제 중 큰아들 황갑고(黃甲古)의 후손이 평해 황씨라고 전해지나 그 후 계대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때 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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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평해 황씨(平海黃氏)는 한(漢)나라 유신(儒臣)으로 신라 시대 폭풍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정착한 황락(黃洛)을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에서 황갑고(黃甲古)[기성군], 황을고(黃乙古)[장수군], 황병고(黃丙古)[창원백]의 3형제 중 큰아들 황갑고(黃甲古)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나, 그 후 계대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