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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027
한자 先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권혜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유적지 용산동지석묘군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지도보기
유적지 선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지도보기
유적지 집자리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까지 포함하는 시대.

[개설]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는 일반적으로 석기 시대[구석기·신석기],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포괄하고 있다. 당시 생활인의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주변의 선진인들 입장에서 기록을 남겨 놓은 경우가 있는데, 철기 시대가 이에 해당된다.

당시의 전반적인 생활 모습은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고고학적 조사 및 연구에 의존하고 복원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질학·형질인류학·기후학·건축학 등 관련 인접 학문 분야와의 상호 교류를 통해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의 시작 단계로, 뗀석기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를 뜻한다. 뗀석기의 출현은 호모인의 등장과 함께 이뤄지며 이때가 공식적인 구석기 시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해당되며, 간빙기와 빙하기를 거친다. 현재와 같은 간빙기 환경이 도래하기 전까지를 말한다. 호모인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고인류 화석은 평양 대현동 동굴의 역포인과 승리산 동굴의 덕천인으로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다.

신석기 시대의 특징은 간석기의 사용, 초기 농경과 정착 생활, 토기 제작이라는 요소로 정의할 수 있는데, 동시에 등장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토기의 등장 시점으로 보아 약 1만 년 전부터 기원전 2,000~1,500년 무렵으로 보고 있다.

청동기 시대는 본격적 농경의 시작과 간석기 사용, 무늬 없는 토기의 등장,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북한 지역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종합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철기 시대는 철기를 도구의 주재료로 사용한 시대이며, 이전의 청동기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철기 시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300년~기원후 300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시기는 후기 고조선이 위만조선으로 이행하는 단계이며, 주변에 여러 정치 집단이 형성되어 국가 사회로 발전하는 단계에 해당된다.

[석기 시대]

영천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와 관련해 확인된 유적·유물은 없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영천시 북안면 신리동 뒷산에서 민물조개 껍질이 발견된 패총인데, 학계에 정식으로 소개된 바는 없다.

한편,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가 1985년 화산면 효정리 앞산에서 농지 개간 중 민무늬 토기와 함께 확인된 바 있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적은 영천 지역의 주요 하천을 따라 고인돌과 집자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금호강(琴湖江)의 지천을 따라 영천시 대창면직천리·신광리·어방리·오길리·대창리, 북안면상리·북리·명주리·고지리·유상리·내포리·임포리·고지리·도천리·용계리 등지에서 약 290여 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자양천(紫陽川) 연안의 선상지에 분포하는 용산동지석묘군[용산리 고인돌떼]은 정식으로 조사된 바 있다.

선돌은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금호읍 봉죽리, 대창면 신광리, 신녕면 완전리에 있다. 집자리는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유적북안면 신리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외 청동기는 1929년 5월 신녕 지역 국도 공사 중 영천시 화산면 연계리에서 세형동검과 동과가 발견되었다. 민무늬토기는 1998년 학술 지표 조사를 통해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도천리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는 완만한 경사를 가진 구릉에서 박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으며, 도천리 팥골마을의 서편 구릉에서는 민무늬토기편이 다량 확인되기도 했다.

[철기 시대]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유적이 있는데, 기원전 1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는 목관묘 1기 내에서 철과와 동모 등 17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된 영천시 금호읍 어은동 유적에서는 한식경·마형대구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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