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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149
한자 官亭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거여로[관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금호면 관정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영천군 금호면 관정동에서 영천군 금호읍 관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금호면 관정동에서 영천군 급호읍 관정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금호읍 관정리에서 영천시 금호읍 관정리로 개편
행정구역 관정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관정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39㎢
가구수 172가구
인구[남, 여] 356명[남자 180명, 여자 176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관정리(官亭里)는 관지동(官旨洞)과 지정동(芝亭洞)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관정리라 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정’이라는 이름 유래는, 이곳이 원래는 들이었는데, 지씨(池氏)가 정자를 짓고부터, 또는 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관정리는 조선 말 영천군 거여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 거여면·고현면·창수면·칠백면을 통합하여 금호면을 신설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관지동과 지정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금호면 관정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되어 영천군 금호읍 관정동이 되었으며, 1988년 5월 3일 동(洞)을 이(里)로 바꾸게 되어 관정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금호읍 관정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관정리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마을 남쪽으로 금호강(琴湖江)이 휘감아 흐르며, 북쪽의 유봉산(遊鳳山)[241m]에서 뻗은 산맥이 갑자기 낮아져서 구릉지를 형성하고 그 끝이 평야가 되었다.

동·서·남 세 방향이 넓은 평야로 되어 있어 그 끝에 금호강이 감돌고 있다. 서로는 저 멀리 팔공산(八公山)의 연봉들이 이어져 오고 있고, 동으로는 황정리를 지나 넓은 평야가 전개되었으며, 약간 남으로는 채약산(採藥山)[498.6m]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현황]

관정리금호읍의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마을은 관지동·당나무거리·지정골로 구성되어 있다. 법정리인 관정리는 관정1리와 관정2리의 두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관정리는 면적이 1.39㎢이며, 인구는 2011년 말 현재 172가구, 356명으로, 남자가 180명, 여자가 176명이다. 현재 경주 최씨가 주류를 이루고, 그 외 경주 이씨 및 기타 성씨가 함께 모여 살고 있다.

관정리의 서편에서는 붉은 색깔의 점토가 나왔기 때문에 옛날에는 기와와 옹기를 많이 구웠던 곳으로, 지금도 간혹 토기가 발굴되기도 한다. 금호읍에는 영천 금호 포도 작목반이 조직되어 있는데, 관정리에는 거여 작목회가 구성되어 63명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관정리의 교육 시설로는 1928년 고촌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한 거여 초등학교와 거여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등이 있으며, 주민 편익 시설로는 관정1리 경로당, 관정2리 경로당이 있다. 국도 4호선대구선 철도가 관정리를 통과하며, 관정리 앞에 기차역인 봉정역이 있어서 대구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하였으나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또한 이 마을에는 1972년 3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순시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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