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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252
한자 金大里
이칭/별칭 본터,본태,본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운주로[금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임고면 금대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임고면 금대동에서 영천군 임고면 금대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임고면 금대리에서 영천시 임고면 금대리로 개편
행정구역 금대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4.35㎢
가구수 145가구
인구[남여] 302명[남 143명, 여 159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대리(金大里)는 본터가 가장 일찍 생긴 마을로 현재 20여 가구의 의성 김씨(金氏)들이 살고 있다. 찜대[蒸大]는 뒷산에 은(銀)을 제련하는 은점이 있었다고 전하며, 삼[大麻]을 찐 곳이라 하여 찜대리라 했다 한다. 금대리의 명칭은 김씨(金氏)와 찜대[蒸大]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금대리는 금대(金大) 서쪽에 있는 마을로, 본터·본태·본기(本基)로 불렸다. 금대리 자연마을 중 가장 오래된 금대의 발상지란 의미로 불려진 본터마을에는 의성 김씨(義城金氏)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새터·새태·신기(新基)는 새로 생긴 마을로 본터 남쪽 약 1㎞ 지점에 있으며, 월성 이씨, 성주 이씨, 영천 이씨, 오천 정씨 등이 살고 있다.

금대리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臨臯郡)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임고현(臨臯縣)에 속하였으며, 공양왕 때 영천부(永川府)에 소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5년(태종 15) 영천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임고면(臨臯面)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금대리의 당곡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임고천이 서남부 임고 지역으로 내려가며, 천장산(天掌山)·도덕산(道德山)·운주산(雲柱山)에서 발원한 하천은 마을의 중앙을 흐른다. 운주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대지맥이 연이어져 대소의 연봉을 이루면서 내려오던 중 해발 456m 고지에서 북쪽으로는 영천댐, 서쪽으로는 천장산에서 뻗은 연봉이 마을 앞을 가리고 있다.

[현황]

금대리의 면적은 4.35㎢,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45가구, 302명으로, 남자가 143명, 여자가 159명이다. 자연 마을로는 무쇳골·점때·정자·새터 등이 있다. 주거지는 임고천 하천 연변과 영천 휴게소 부근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익산 포항 고속 도로의 임고 1터널이 있으며 영천 휴게소가 금대리 북부에 있다.

금대리의 문화재로는 백암산성(柏岩山城)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김백암(金栢岩) 장군이 병사를 인솔하여 성을 개축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출전한 곳이다. 백암산성은 길이 약 700m에, 높이 1m, 폭 3m 정도의 토석 혼축으로, 신라 시대부터 전해오는 성인데, 현재 성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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