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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 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486
한자 石器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권혜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2년 4월 - 신리동 뒷산 패총 발견
소재지 신리동 뒷산 패총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동 딋산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

[개설]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석기 시대는 시기적으로 세계적인 추세인 전기·중기·후기로 채택해 적용하기도 하나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현황이다. 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주로 주거하였으며, 생계는 식물 자원에 치중된 수렵 채집으로 이동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구는 돌과 돌끼리 서로 부딪치거나 두드려 떼어서 제작한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였다.

최초의 구석기 유물이 확인된 것은 1930년대 두만강변 동관진유적[현 강안리]이나 1962년 함경남도 웅진군 굴포리 서포항유적과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유적에서 수습된 것이 공인되었다. 이후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유적에서 우리나라 구석기의 존재가 명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약 1만 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2,000년~1,500년 무렵까지 지속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석기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불을 사용하여 그릇을 제작하였다. 그릇은 진흙을 빚어 그릇 몸통에 무늬를 새겨 넣었기에 빗살무늬토기라 한다. 무늬는 융기문과 압날문 계열에서 침선문 계열로 변화한다.

도구는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도구보다 훨씬 정교하고 발달된 기술로 여러 가지 형태의 용도로 갈아서 제작한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였으며, 주거는 원형이나 방형의 평면 형태를 가진 움집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대가 앞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지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영천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신석기 시대의 유일한 유적인 ‘신리동 뒷산 패총’이 보고되어 있다. 일반적인 패총보다 양호한 상태는 아니나 신석기 시대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구석기 시대의 유적 존재 가능성도 시사한다.

[신리동 뒷산 패총]

신리동 뒷산 패총은 1972년 4월 영천시 북안면 신리동 뒷산 뽕밭 주인이 밭을 일구다가 토석층에서 다량의 민물 조개 껍질을 발견하였다. 패총은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되었으며, 일부 토기편도 있었으나 분석할 만큼의 자료는 될 수 없었다.

우리나라 패총은 일반적으로 해안선이나 강 어구에서 발견되는 것이 보통인데, ‘신리동 뒷산 패총’은 북안천과 약 1㎞ 떨어져 있어 강과의 관련성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른 지역의 패총처럼 빗살무늬토기 등의 유물이나 주거지·인골·동물뼈·생선뼈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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