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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538
한자 現代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된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

[개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광복이라는 환희 속에 미국과 소련의 남북 분할 점령으로 인한 혼란과 좌우의 분열, 그리고 6·25 전쟁 등의 혼란기를 겪었다.

1960년 4·19 학생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972년 10월 유신 등의 정치적 격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제7차 경제개발계획과 1972년 새마을운동 등의 경제적 변화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나아가 민주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이러한 성장과 발전을 통해 남북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의 지상 과제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해방~1950년대]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시작된 해방 정국은 환희와 혼란의 격변기였다. 영천 지역도 좌익이 주도한 영천군인민위원회와 우익이 주도한 대한독립촉성회 계열의 대립과 갈등으로 1946년 10월의 대구 10·1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혹독한 살상이 벌어진 곳이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한층 심화되어 1950년 영천 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부역 사건 등이 발생하였다.

1948년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면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영천군에서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계열의 정도영(鄭島榮)이범교(李範敎)가 제헌 국회의원으로 무투표 당선되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공포된 제헌헌법 제97조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52년 실시된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영천읍 의원 15명과 영천군 10개 면 면의회 의원 126명이 당선되었다.

한편 6·25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까지 9일간에 걸친 영천지구 공방전은 한국전쟁의 국운을 바로 잡은 큰 전투로서 역사에 남게 되었다.

[1960년대~현재]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972년 10월 유신 등의 정치적 격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제7차 경제개발계획과 1972년 새마을운동 등의 경제적 변화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나아가 민주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1937년 7월 영천면이 영천읍으로 승격된 뒤, 1973년 7월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7월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면서 영천군과 분리 독립되었고, 1983년 행정구역도 조정되어 인근 지역이 편입되어 영천시의 행정구역은 크게 확장되었다. 즉 1983년 금호읍 도남동, 청통면 오수동·쌍계동, 화산면 매산동이 영천시로 편입되었고, 1989년 청통면 서산리가 영천시에 편입되었다.

1972년 4월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1977년 농촌 새마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72년 3월 7일 「대통령령 제6104호」에 따라 정부 기구로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설치되었으며, 1980년 12월 1일 「민법 제32조」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체로서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창설하여 민간 운동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영천군지회는 1980년 12월 1일에 창립되어 1983년 3월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영천구지회로 개칭되었고, 그 산하에 새마을지도자 영천군협의회, 영천군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 중앙회 영천군지부가 설치되었으며, 현재 민간 주도기로서 영천 지역의 자원 봉사 단체로서의 위상을 지향하고 있다.

영천 지역은 교통의 중심지이다. 중앙선대구선 철도가 영천을 분기점으로 삼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가 영천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국도·지방도·군도가 영천군 관내를 통과하고 있다.

영천 지역은 대구의 위성도시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대구는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고, 1994년 광역시로 발전하면서 급격히 팽창하였다. 따라서 영천은 산업도시로서의 위상이 증대함은 물론이고, 전원주택 도시, 행정 중심 도시, 주말 위락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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