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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31
한자 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 건립
현 소재지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 지도보기
성격 비|비각
양식 호패형
관련 인물 고종|전상필
재질
크기(높이) 147㎝
너비 38㎝
두께 18.5㎝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전상필(全祥弼)이 세운 비.

[개설]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화북면 용소리 부들밭마을 남쪽 고현천변에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후 고종을 배알하기 위해 전상필이 건립했다. 용소리 부들밭마을화북면 내에서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영천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두메산골이다.

[건립 경위]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는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후 고종황제를 배알하기 위해 화북면의 학자 전상필이 1920년에 건립했다. 비와 함께 비각이 있었지만 현재는 없어지고 주춧돌 4개만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 부들밭마을 남쪽 고현천변 언덕에 있다. 이곳은 고현천의 상류 지대로 천의 폭이 좁고 물살도 빠르다. 고현천 서편은 빠른 물살에 의해 바위가 깎여나가 단애지대가 형성되어,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다.

[형태]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는 천변의 퇴적암[셰일] 위를 흙과 돌로 평평하게 정지해 기단으로 삼은 다음 단칸 규모인 원형 기둥의 목조 건물을 세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없어지고 원형으로 가공된 초석만 남아 있다.

초석의 중앙부에 머리가 땅에 반쯤 묻힌 귀부를 앉히고 비갓 없이 상부 모서리를 사절한 호패형의 비를 귀부 등에 홈을 파 끼웠다. 비는 어떠한 장식도 없이 전면에 비명을 새기고 좌측면에 건비년대(建碑年代)를 새겼다. 후면과 우측면에는 공백으로 처리했다. 비의 높이는 147㎝, 너비는 38㎝, 두께는 18.5㎝이며, 표면은 매끄럽게 갈았다.

[금석문]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의 전면 중앙부에 세로로 ‘대한 광무 황제 애민 불망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라고 비명을 새기고 우측 편에 ‘국유흥폐천명유재(國有興廢天命惟在)’라고 쓰고, 좌측에 ‘민안경착제력함재(民安耕鑿帝力咸載)’라고 썼다.

비의 좌측면에는 세로로 ‘승하 삼년 경신오월삼일 봉립(昇遐三年庚申五月三日 奉立)’ ‘주창 유학 신 전상필 근서(主創幼學臣全祥弼謹書)’라고 새겨져 있어 전상필이 1920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의 비각은 세월이 지나고 관리 소홀로 붕괴되어 없어지고 네 개의 원형 초석 가운데 귀부와 비만 세워져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지표면이 약간 퇴적되어 귀부 머리가 반 정도 묻혀 있다.

비의 북동쪽 1.5m 지점의 기단부에는 화강석을 방형으로 다듬어 설단용으로 쓴 석재가 반듯하게 놓여 있다. 2012년 현재 보현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인 이곳은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하고 있다. 이 비석 또한 전문가 검토 회의를 거친 다음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는 1920년에 건립되어 그 시기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경술국치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사료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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