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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40
한자 永川地區戰蹟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0년 10월 7일연표보기 - 영천지구 전적비 건립
현 소재지 영천지구 전적비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11-33번지 지도보기
성격 현충시설물
관련 인물 유재흥
재질 화강암|청동
문화재 지정 번호 관리번호 33-2-29
문물|보호단위 등급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물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마현산 정상에 있는 6·25 전쟁 때 영천지구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일명 영천대첩[1950년 9월 4일~1950년 9월 13일]으로 불리고 있는 영천지구 전투는 9월에 발생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을 감행 후 계속적인 퇴각으로 밀리던 국군은 8월 칠곡·왜관의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미군은 왜관지구에 제1기병사단을 배치했고 국군은 다부동지구에 제1사단, 신녕지구에 제6사단, 영천지구에 제8사단, 기계~안강 지구에 수도사단, 포항지구에 제3사단을 배치해 방어선을 구축해 조직적인 방어전을 전개했다. 이 방어선은 아군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국가의 국운이 걸린 최후의 보루였다.

UN군은 영천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가면 울산~밀양을 잇는 이른바 데이비드슨 방어선[맥아더 장군이 계획한 경상남북도의 경계 90㎞에 설치한 낙동강 방어선의 후방 방어선]으로 철수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1950년 9월 5일 북한군 제15사단은 증강된 5개 연대와 전차를 앞세우고 제2군단[군단장 준장 유재흥] 제8사단 정면으로 돌진해 영천이 함락되었다. 제8사단장 준장 이성가는 영천 북쪽에 21연대와 6사단의 16연대를 배치해 적의 증원 부대와 보급로 및 퇴로를 차단케 했고 남쪽으로는 7사단 5연대로 하여 아화리[경주시 서면,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와 접경 지역]를, 8연대로 유상리[영천시 북안면] 일대를 고수케 해 반격하도록 하고 예하 16연대와 1사단 11연대로 하여금 적의 주력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때 포항 전선에 참여한 예하 10연대도 긴급히 원대 복귀하여 작전에 참여하였다.

퇴로가 차단당한 적은 포위망 속에서 큰 타격을 입고 일부의 패잔병만이 도주했고 국군은 마침내 10여 일간의 필사의 공방 끝에 빼앗긴 영천을 탈환하여 9월 이전의 낙동강 방어선을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영천 전투는 전쟁 발발 후 최초의 국군 대승이었고 또한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를 막아 진격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후일 김일성은 영천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말을 남겼다 하니 영천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전투였나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

이 영천 대첩에 소요된 아군과 북한군을 비교해 보면 한국군은 병력이 1만 5천 명, 북한군은 1만 2천 명으로 한국군이 많았다. 화력은 한국군이 57㎜ 대전차포 6문과 곡사포 105㎜ 26문에 불과했지만[후에 미 제1기병 사단에서 증간된 1개 전차 소대 파견] 북한군은 76㎜ 대전차포 38문, 곡사포 122㎜ 18문, 전차 T-34 12대로 한국군보다 월등했다.

영천 대첩에서 포획한 무기는 차량 82대, 전차 3대, 120㎜ 박격포 20문, 82㎜ 박격포 3문, 61㎜ 박격포 11문, 120㎜ 포 3문, 76㎜ 포 30문, 45㎜ 대전차포 32문, 기관총 6정, 반 전차총 36정, 중기관총 31정, 징총 1,242정, 각종 소총 887정, 기관단총 3정, 권총 2정, 수류탄 1,690정, 전화기 12대, 무전기 15대, 트렉터 8대, 로켓포 7문, 자동 소총 9정, 경기관총 89정 등이고 사살된 북한군이 3,799명, 포로 309명이다.

[건립 경위]

1950년 9월 6일 영천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뒤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이 필사적인 공격을 가하여 적을 퇴각시켰다. 하지만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계속적인 수호가 어려워지자 잠시 북한군에게 영천을 내어 주었다. 이에 분노한 영천의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을 잡고 공격에 가담하여 국군 제2군단은 다시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50년 9월 9일 총반격을 감행하고 금호강 변에서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고 영천 탈환에 성공했다. 이런 중요한 전투를 기리기 위해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비문을 쓴 다음 육군 제1205 건설공병단에서 영천문화원 내에 영천지구 전승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영천지구 전승비가 세워진 후 교통부에서 국방부에 협조를 구해 국제관광공사에서 다시 영천 마현산 정상[일명 꽃동산]에 영천지구 전적비를 세웠다. 영천지구 전적비는 1980년 10월 7일 조각가 백문기가 설계하고 조각했다.

그리고 경산시 하양읍 하양초등학교 내에는 영천 전투에서 활약한 국군 제2군단장 유재흥의 전적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있다.

[위치]

영천지구 전적비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있으며 일명 꽃동산으로 불리는 마현산[해발 147.4m] 정상 남쪽 봉우리[해발 140m]에 전적비가 있다. 진입은 영천향교 뒷길로 오르는 것과 영천중학교 서편으로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또 서문 오거리에서 영천시민운동장 위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산으로 오르면 역시 만날 수 있다.

[형태]

영천지구 전적비마현산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봉우리 정상부에 있는데 약 100평 규모의 부지에 2중의 높은 계단을 통해 전적비 앞마당에 이른다. 마당은 평평하게 화강암 판석으로 바닥을 깔고 약간 뒤쪽으로 치우쳐 국군 동상을 조각한 비를 중앙에 세우고 그 뒤에 ‘ㅅ’자형의 화강암 판석을 붙인 조형물이 앞의 비를 기준으로 서로 대칭되게 세워져 있다.

전적비는 상부에 청동으로 조각해 주조한 국군 동상이 있다. 동상의 형태는 오른쪽 허리춤에 총을 받치는 경계 자세를 취하고 늠름하게 서 있는 국군이 쓰러져가는 국군을 무릎에 기대주고 있는 형상이다.

[금석문]

영천지구 전적비는 화강암 판석 가운데 동판을 붙여 비문을 적었다. 비문은 동판의 상부에 가로로 “영천지구전적비’라고 쓰고 아래에 ‘조국의 운명을 건 갈림길에 적구의 무리들이 영천뻘을 넘나드니 인과 철이 용융하는 전쟁터로 너, 나 뛰쳐나가 둑을 막아 내 고장을 지켰다. 저-기룡산은 이-금호강은 너의 용사를 길이 간직하리”라는 비문을 적고 그 아래에 영문으로 다시 표기했다.

비명과 비문은 청동으로 양각 주조했다. 한편 전적비 전면의 계단 동쪽에 세워진 ‘무공애훈국가유공자비(武功愛勳國家有功者碑)’ 라는 비명을 새기고 아래 기단부에 비문을 새겼다.

[현황]

영천시 교촌동 꽃동산 정상에 있는 영천지구 전적비는 주변을 정지한 다음 2중의 계단을 통해 전적비 앞마당에 이른다. 마당은 화강암 판석을 깔고 앞쪽에 국군 동상을 조각한 비를 세우고 뒤쪽에 두 개로 분리해 서로 대칭되게 조성한 조형물이 앞쪽의 비를 기준으로 ‘ㅅ’자 형태로 세워져 있다.

또 앞쪽 계단 동편에는 무공애훈국가유공자비가 세워져 있고, 전적비 남쪽 구릉 정상부에는 충혼탑이 있으며 능선길을 따라 영천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생활 체육 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천지구 전적비에서 직선거리로 남동쪽 830m에는 1958년에 세운 영천지구 전승비가 내려다보인다. 한편 영천 지역의 현충 시설로는 고경면 청정리국립 영천호국원에 총 30억을 들여 2002년 준공된 영천 대첩비와 신녕면 화성리 성환산 공원에 1958년 세운 신녕지구 전승비가 있다.

2011년 11월 2일 마현산 전적비에서 유족, 기관 단체장, 학생 등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자유총연맹 영천시지회 주관으로 제31회 자유수호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거행됐고, 매년 현충일이 되면 충혼탑과 전적비에서 현충일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천지구 전적비는 6·25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국군의 총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고 북진을 할 수 있었던 영천지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의미 깊은 유적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4.30 오타 수정 포로 209명 -> 포로 309명
이용자 의견
이** 영천전투(1950.09.05.~1950.09.13.)에는 국군 7·8사단과 북한군 15사단이 참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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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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