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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42
한자 李敢旌閭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362년 - 이감 출생
건립 시기/일시 1409년연표보기 - 이감 정려각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26년 - 이감 사망
보수|복원 시기/일시 1774년 - 이감 정려각 중건
현 소재지 이감 정려각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지도보기
성격 비 및 비각
양식 이익공|맞배지붕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이감(李敢)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개설]

고려 시대 학자인 이감[1362~1426]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정몽주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나 정몽주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138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 문과에 급제해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언관이란 이유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만년에 고향인 영천에 은거했다.

늙은 부모를 극진히 봉양했으며, 부모상에 각각 3년의 여막 생활을 해 호랑이도 감동해 따르며 보호해주었다고 전한다. 조정에서는 공의 덕행을 가상히 여겨 1409년 정려를 내렸다.

[위치]

이감 정려각이 있는 양항리 돌목마을임고서원이 있는 서원마을과 약 500m 떨어져 있는데 영천 시내에서 영천댐[자양댐] 방면 지방도 923호선 도로를 따라 가면 임고서원 조금 못 미쳐 우측에 돌목마을이 보이고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길이 있다. 비각은 마을 앞에 있다.

[변천]

이감 사후 1409년 공의 효행을 기려 나라에서 정려하고, 임고면 양항리에 정려각을 세웠다. 1774년 건물이 퇴락해 중건했다. 근래에 담장과 건물을 중수하고 단청을 새롭게 입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이감 정려각은 단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 건물로 일반적인 비각 형태로 전면에 현판이 걸려있고, 내부에 비가 세워져 있다. 정려각 주위는 방형의 토석 담장으로 두르고 일각문을 통해 비각에 들어간다.

정려각은 원형 기둥을 세우고 주 상부에 창방을 건너지르고 연화문으로 초각한 앙서를 이중으로 한 이익공 양식으로 정려각을 완성했다. 주간에는 화반을 앉혔다. 벽은 홍살벽으로 처리하고 건물 전체 목부재에 화려한 단청을 입혔다.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이엇다. 정려각의 전면 상부에 ‘문한당이선생지려(文閑堂李先生之閭)’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현황]

이감 정려각은 돌목마을 입구에 있고, 정려각 뒤로는 민가가 모여 있고 앞쪽은 논이 펼쳐져 있다. 마을 동쪽은 보현산에서 발원한 자호천[금호강 상류]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정려각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건너편에는 임강서원(臨崗書院)과 문한당(文閒堂)이 세워져 이감의 추모지소(追慕之所)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이감의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있고 묘소 아래 심곡재(心谷齋)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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