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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01
한자 江湖亭
이칭/별칭 자호정사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611-22[성곡리 7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99년연표보기 - 자호 정사[강호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90년 - 자호 정사를 강호정으로 개칭하고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75년 8월 18일연표보기 - 강호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강호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이전 시기/일시 1976년 - 강호정 이건
현 소재지 강호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자호정사[강호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
성격 누정
양식 물익공|홑처마|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정재종
관리자 정재종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세아(鄭世雅)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개설]

정세아[1535~1612]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다. 1558년 사마시에 급제해 진사(進士)가 된 후 임진왜란 때 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수복 전투와 경주성 탈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전란이 진정되고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정세아는 자신이 거느렸던 병사를 조희익(曺希益) 장군에게 귀속시키고 고향인 자양[자양면 노항리]으로 돌아와 자호천 위에 자호 정사(紫湖精舍)를 짓고 ‘강호(江湖)’라 자호하며 은거했다.

왜란이 끝난 후 논공행상에 관여하지 않고 제장들에게 물려주었는데 이를 안 선조가 황산도찰방으로 임명하고, 병조참판으로 추증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임고 서원을 복원했고, 당대의 명유였던 지산(芝山) 조호익, 여헌(旅軒) 장현광, 창석(蒼石) 이준, 모당(慕堂) 손처눌 등과 도의(道義)로서 교유했다. 1732년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1788년 강의(剛義)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저서로는 『호수실기(湖叟實記)』가 전하고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환구 세덕사에서 제향되고 있다.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고 아래에 하천재(夏泉齋)와 신도비가 남아 있다.

[위치]

강호정은 행정 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영천댐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천 시내에서 임고면을 통과해 영천댐으로 올라가면 자양면소재지가 나온다. 면소재지 직전 100m에 좌측으로 난 산길을 올라가면 문화재 이주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강호정은 문화재 이주 단지 진입로 바로 직전 좌측 산 사면에 있다.

[변천]

강호정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정세아가 만년의 강학처로 활용하기 위해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자호천 언덕에 자호 정사라 이름 짓고 1599년 건립했다. 세월이 흘러 무너진 정사를 후손들이 정세아의 학덕과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세아의 자호(自號)를 따 강호정이라 하고 1790년 옛 터에 중건했다. 그 후 1976년 영천댐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지기 전인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강호정은 문화재 이주 단지 가장 남쪽의 산 사면의 경사지에 남동향으로 있다. 배치는 전면에 강호정, 후면에 고직사를 두었는데 각각 별도 영역으로 구획해 배치되어 있다.

먼저 고직사 우측면의 일각문을 통해 진입하고 고직사와 정자 사이의 토석 담장 중앙부에 있는 사주문을 통해 정자로 진입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이는 영천댐 공사로 새로운 터에 배치된 관계로 당초 구성과 달라진 결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二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경사지에 이건된 관계로 정자 전면의 기단은 상당히 높게 축조되었고 반면 후면으로는 낮은 외벌대 기단으로 처리되었다. 정자 내부로의 진입 역시 후면 대청 뒷문[당판문]으로 진입한다. 이 점 또한 경사지에 놓인 관계로 진입 구성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一’자형 건물이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 측면에 온돌방을 들인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의 평면이다. 정자의 전면에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창호는 청방 간에 삼분합문을 두고 방의 전면과 측면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대청 후면의 쌍여닫이 판문[당판문]에는 머름을 두지 않았다. 이는 이건 후 주 출입 동선의 편의를 위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전면의 퇴 칸 양 측면에는 외짝 판창을 두었다.

구조는 정자 전면을 누마루로 구성해 하부에 자연석 초석 위에 누하주를 두어 입면상 중층 구조를 표현했다. 누 상부에도 원형기둥을 세우고 주 상부에 간결한 몰익공 양식으로 꾸미고 삼량 가의 가구를 구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처리하고 박공면에 풍판을 달았다.

[현황]

강호정은 경사진 대지에 고직사와 강호정을 배치시킨 관계로 정자의 전면과 후면은 고저차가 크다. 동쪽의 영천댐을 바라보고 있다. 정자 내부 대청 후면 상부에는 ‘자호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강호정의 정자는 간결하면서도 풍치가 돋보인다. 영천 지역의 재실과 정자 등 전통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하고 건물의 측면과 배면 심벽에 벽선을 강조해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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