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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15
한자 活川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활천정 건립
현 소재지 활천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1리 615[괴정]지도보기
성격 누정|정자
양식 소로수장 3량가 ‘ㄱ‘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나주정씨 문중
관리자 나주정씨 문중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누정.

[개설]

활천정(活川亭)은 조선 철종(哲宗) 때의 학자인 정갑조(丁甲組)를 추모키 위해 문하생과 후손들이 마을 입구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갑조나주 정씨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관찰사 정몽길(丁夢吉)의 후손으로 자는 술지(述之), 호는 농고(聾皐)이다.

정갑조는 어릴때부터 효자로 소문이 났고, 자라서는 문사(文辭)가 성대(盛大)했다. 아우인 정봉조(丁奉組)·정순조(丁舜組)와 우애가 돈독했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정자의 이름인 ‘활천’은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의 이름으로 현재는 용호천으로 불린다.

[위치]

활천정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 1리 괴정마을 입구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신녕을 거쳐 군위군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면 화산면 덕암 1리가 나온다. 여기서 용호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지 말고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3㎞ 가면 화덕초등학교가 소재한 덕암 2리와 효정 2리 강변마을[갱마] 다음에 효정 1리 괴정마을에 이른다. 활천정은 마을을 관류하는 용호천[활천]변 마을 진입부에 남서향으로 있다.

[변천]

활천정정갑조 사후 문하생과 후손들이 공을 추모하기 위해 병오년(丙午年) 1906년에 건립했다. 정갑조의 후손들에 의하면 활천정신녕현의 객사 건물을 헐고 그 부재를 실어와 건립했다고 한다. 실재로 활천정의 주 부재[기둥]에서 장부 구멍이 많은 것을 볼 때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형태]

활천정은 평평한 대지에 방형의 토석혼축(土石混築) 담장을 두르고 있는데 남서쪽 모서리에 배치된 맞배 지붕의 두 칸 문간채를 들어서면 ‘ㄱ’자형 정자가 남서향으로 앉아있다.

평면 형식은 ‘ㄱ’자형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단촐한 3량가 구조이다. 동-서간의 전면 건물은 어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편을 누각형으로 꾸며 ‘광영헌’이라 하고 동편에 청방간 삼분합들문을 단 온돌방을 두었다.

후면의 남-북간 건물은 두 통칸 온돌방 구조로 광영헌[전면 좌협칸 마루칸]과 건물 우측 뒤편에서 진입하는데 ‘농고’라는 현판을 걸었다. 전면의 광영헌은 전면과 좌측면에 계자각 난간을 부설한 헌함을 두어 건축미를 살렸고, 우측면과 배면 그리고 농고의 좌·우측면에는 쪽마루를 부설해 동선의 편리성을 갖추었다. 농고의 배면은 벽장을 두어 유일한 수장 공간이 되었다.

진입은 전면의 광영헌 어칸에 나 있는 계단으로 하며 건물 모서리에 구불구불한 활주를 세워 마치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광영헌 서편은 판벽으로 구성해 가운데에 쌍여닫이판창을 달았고 어칸 배면은 심벽에 쌍여닫이판창을 달았다.

우협칸의 온돌방은 청방간에 삼분합들문을 달아 유사시에 공간 확장을 꽤했고, 전면에는 쌍여닫이띠살창을 달았다. 농고는 우측면 뒤 칸에 쌍여닫이띠살문을 달아 부 진입부의 효율성을 꽤했으며 앞 칸에는 쌍여닫이띠살창 내부에 쌍미닫이창을 덧대고 두겁창으로 마감했다. 이런 점을 볼 때 뒤 칸의 창호는 출입을 위한 문의 성격이고 앞 칸의 창호는 창의 성격으로 판단된다.

배면부의 벽장은 아래·위를 분리한 수장 공간인데 아래는 좌측부에 편중해 외여닫이문을 달고 위에는 양쪽에 들문을 각각 달았다. 특히 벽장 좌·우면에 작은 회전창을 두어 환기가 용이하도록 꽤했다.

구조는 소로수장의 단촐한 3량가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었다. 기단은 시멘트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주춧돌은 덤벙주초[자연석 주초]가 대부분이지만 광영헌 누하부는 원형의 장초석을 이용했다. 기둥은 광영헌의 전면에만 두리기둥[원형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방형기둥]을 이용했다.

광영헌의 전면과 양 측면 마루 칸의 주 상부는 보아지[봉량]와 창방 그리고 주두를 결구시켜 보와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주심도리 하부의 장혀와 창방 사이는 소로를 끼워 수장했다. 청방간 대들보 위는 모서리를 궁글린 판대공을 앉혀 종도리를 받고 있는 반면, 대청의 대들보는 위로 휜 궁형[우미형, 홍예형]으로 대공 없이 곧 바로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이는 시각적으로 거슬리지 않고 재료의 절약과 공간의 확장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정자 내부에는 ‘활천정(活川亭)·광영헌(光影軒)·농고(聾皐)’ 등 현판 3점과 이만도(李晩燾)[1842~1910]가 쓴 기문 「활천정기(活川亭記)」, 김도화(金道和)가 쓴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다.

근년에 활천정 북쪽 30m 정도에 새로운 정자를 건립해 문중에서 이용하고 있어 활천정의 이용빈도는 많이 줄었다. 활천정 북쪽 인근에 정갑조가 기거했던 사우가 남아있다. 현재까지 크게 수리한 것 없이 잘 보존되고 있지만 광영헌의 어칸과 우협칸 전면의 마루는 보수된 듯하다.

[의의와 평가]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을 주며 활주를 세워 건물이 더욱 생동감 있게 구성해 3량가 건물의 단순함을 극복했다. 평면구성에 있어 ‘ㄱ’자형은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함으로 보이며 광영헌을 누각형으로 한 것과 청방간 들문을 부설한 것 등은 여름철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농고의 배면에 부설한 벽장은 2단으로 구성해 다양한 수납을 용이하게 했으며 상부의 들문은 쉽게 꺼낼 수 있는 방법으로 영천 지역 타 정자 건축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벽장 양 측면의 환기창을 둔 것은 건축주의 세심한 배려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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