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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18
한자 二皓堂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87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1년연표보기 - 이호당 건립
현 소재지 이호당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872-1번지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소로수장|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조진옥·조상옥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조진옥(曺振玉)의 본관은 창녕, 호는 형호(兄皓)이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학자로 『척사변(斥邪辨)』·『이기변(理氣辨)』·『삼재변(三才辨)』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종제(從弟)인 제호(弟皓) 조상옥(曺相玉)과 함께 이곳 이호당(二皓堂)에서 강학을 했다.

[위치]

이호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872-1번지 월지마을에 있다. 화남면소재지에서 화북면소재지로 가다보면 고현천에 놓인 오산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난 제방길 있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첫 마을이 오산리 월지마을이다. 정자는 마을 초입에 있는 폐교된 오산초등학교 북쪽 민가 사이에 있다.

[변천]

이호당은 조선 영조 때의 학자인 조진옥이 강학을 위해 이곳 이구(离邱)[현재의 화북면 오산리 일대]로 이사한 후 3년 뒤인 1791년(정조 15)에 정자를 건립했다. 당호를 아우 조상옥과 의논해 이호당이라 정한 것은 두 백발 노인[조진옥·조상옥]이 함께 거쳐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이호당은 건립 후 중건 된 건물로 보이며 중건 년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근대 이후 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문에 따르면 건립 당시에는 중앙에 두 칸 방을 두고 좌우에 각 한 칸의 실[대청]을 드린 중실형이었지만 중건되면서 중당협실형으로 변모되었다.

[형태]

이호당은 대체로 방형의 토석담장 안에 ‘一’자형의 정자가 남동향으로 독립배치되고 담장 정면에 사주문을 배치시켰다. 진입은 담장 정면에 난 사주문으로 통해 정자 툇마루로 오르는 정면 진입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에 대청마루방을 두고 양 측면에 각 한 칸의 온돌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이다. 방의 뒤에는 벽장을 두었고 대청 뒤와 건물 측면에는 쪽마루를 부설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창호는 청퇴간과 우측 청방간에 사분합들문을 두어 공간 확장을 꾀했고, 좌측 청방간에는 네짝 미서기문을 달았다. 또 대청 후면에는 쌍여닫이판창을 내었다. 온돌방 전면과 좌측방 측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세살창을 달았고, 우측방 측면에는 외여닫이세살창을 두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낮은 기단 위에 전병주초를 앉힌 다음 퇴칸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기단과 마루와의 높이차를 적게 했는데 이것은 진입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 상부는 간결한 소로수장으로 해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처리하고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 형태이며, 한식 기와와 일식 기와를 이엇다.

[현황]

이호당은 전면 상부에 ‘이호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기문이 전한다. 건물의 부재와 수법 등을 볼 때 건립 당시의 것은 없고 근대 이후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호당은 근대 이후에 중건한 건물로 근대 이후에 나타나는 건축적 특징이 보여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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