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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26
한자 永慕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63년 또는 1864년 - 영모정 건립
현 소재지 영모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장혀수장|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황보성(皇甫星)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황보성[1700~1756 추정]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우(景虞)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효자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나라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이란 증직을 내렸다. 어머니 영양 이씨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한 것으로 마을 어귀에 적덕비가 세워졌다. 황보성의 묘소는 마을 뒷산에 있다.

[위치]

영모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 있다. 구전리는 영천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 화남면소재지에서 청송 방면으로 1.7㎞ 정도 가면 금호2리 질구지마을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안천리행 진입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들어가 안천1리 능계마을을 지나면 월곡리와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으로 접어들어 들어가 온천마을을 지나쳐 끝까지 들어가면 구전리가 나온다. 정자는 구전리 신전마을 개천을 건너 100m 정도 가면 좌측에 보인다.

[변천]

영모정은 조선 정조 때의 효자로 이름 난 황보성을 기리기 위해 후손[황보성의 고손] 황보신(皇甫莘)이 건립했다. 황보성은 인근의 조극승(曺克承)에게 찾아가 기문을 청했는데 거절당하고 그 뒤 종손 황보양(皇甫讓)이 재청해 1864년 갑자년(甲子年)에 기문이 기록되었다.

기문은 건물이 완성 된 이후에 짓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 영모정 기문의 내용을 보아도 건물이 완성된 뒤 몇 달 뒤에 작성된 것을 알 수 있어 영모정은 1863년과 1864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큰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고 퇴칸에 유리문을 단 정도의 수리가 있었다.

[형태]

영모정은 산 기슭 암반을 등지고 ‘ㄷ’자형의 토석담장 안에 ‘一’자형의 정자를 남동향으로 독립배치 시켰다. 담장 정면 우측의 일각문을 통해 정자 툇마루로 오르는 정면 진입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우측에 대청을 두고 촤측에 두 칸의 온돌방을 들인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편당형이다. 좌측방의 뒤에는 벽장을 두었고 대청 뒤와 우측방 뒤 그리고 건물 좌측에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창호는 청방간에 사분합문을 두어 공간확장을 꾀했고 대청 뒤는 판벽에 외여닫이 창호를 두었다. 대청 측면에 쌍여닫이 판창을 두고 퇴칸 좌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호를 두었다. 방 사이는 미서기문을 달았고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최근 퇴칸에 네짝미서기 유리문을 설치해 현대생활에 맞도록 개조했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앉힌 다음 퇴칸에만 원형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기둥 상부는 장혀수장으로 어떤 장식도 없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처리하고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 형태이다.

[현황]

기단은 시멘트로 마감되어 정돈되어 있고, 퇴칸에 유리문을 달아 현대생활에 맞추었다. 지붕의 기와는 근대 이후에 유행했던 일식기와와 한식기와가 얹혀져 있다. 마을에 황보성이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만든 반백대(攀栢臺)가 있고 폐교된 초등학교 뒤에 어머니 영양 이씨 적덕비가 세워져 있다. 건물은 건립 당시의 부재가 대부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일부 재료는 교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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