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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호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61
한자 風乎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봉동 28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6년연표보기 - 풍호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4년 - 풍호정 중수
현 소재지 풍호정 - 경상북도 영천시 봉동 285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몰익공|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관리자 달성 서씨 영천봉동본촌 문중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서유대(徐惟岱)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서유대[1761~1822]의 본관은 달성, 자는 맹담(孟澹)이고 호는 학와(壑窩)로 장인인 몽암 정희(鄭熺)에게서 수학했다. 만년에 풍호정(風乎亭)을 건립해 은거하면서 수양했다. 풍호정의 당호는 남와(南窩) 정동필(鄭東弼)[1740~1820]이 지었고 기문은 남려(南廬) 이정엄(李鼎儼)[1755~1817]이 썼다.

[위치]

풍호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봉동 285번지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경주로 가는 국도 4호선을 따라 가면 경부고속도로 영천 나들목으로 빠지는 우측길로 350m 가면 북안천 건너 우측 언덕에 풍호정이 있다.

[변천]

풍호정서유대가 만년에 휴식과 강학을 위해 이곳 봉동 북안천변에 1796년 건립했다. 당초 작산동에 있던 사당을 뜯어와 현 위치에 사당과 정자를 건립했다고 한다. 그 후 퇴락해 무너진 것을 후손 서종순(徐鐘舜)이 문중과 협의해 1904년 중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풍호정은 낮은 언덕에 ‘ㄷ’자형 토석 담장을 두르고 건물의 우측 편은 담장 없이 사면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정면 좌측에 난 사주문을 들어서면 ‘一’자형의 정자가 동향으로 독립 배치되어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우측에 대청을 두고 좌측에 온돌방 두 통칸을 드린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편당형이다. 대청 측면과 퇴 칸 전면에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다. 기문에 따르면 헌[대청 칸]을 가로질러 헌함을 두고 제자들이 공부하던 곳이라 표현했다.

현재 대청 측면 헌함은 전면보다 약간 더 넓게 되어 있어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방의 배면에는 벽장을 두었고 대청 배면과 퇴칸 좌측면에는 쪽마루를 부설해 진입 공간으로 삼았다. 창호는 청방 간에 쌍여닫이문을 달아 방으로 출입케 했고, 대청 배면에는 쌍여닫이 판문 좌측으로 외여닫이문을 두어 이곳으로 진입케 했다.

풍호정의 진입 구성은 건물 좌측면과 배면 진입을 이룬다. 방의 전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과 외여닫이 창호를 달았고, 측면에는 쌍여닫이 창호를 달았다. 구조는 건물 우측의 대청 칸을 누마루로 조성했는데 대청과 퇴칸을 원주로 세우고 방은 방주와 원주를 썩어 세운 독특한 구조이다. 기둥 상부는 간결한 몰익공으로 처리해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잇고 추녀 끝에는 막새를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다.

[현황]

풍호정은 북쪽의 북안천과 아래 정못들을 내려다보며 언덕에 앉아 있다. 담장 정면 좌측의 사주문 가까이 담장 좌 측부 앞쪽에 일각문을 두었다. 정자 우측면 대청 상부에 현판이 걸려 있고 기문과 중수기가 전한다. 정자 뒤편에 풍호정 종택이 있는데 사당은 없어지고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풍호정은 18세기 말에 건축되어 한 차례 중수 된 건물로 기문에 건립 당시의 모습이 일부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영천 지역의 누정 건축을 연구할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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