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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49
한자 全三益
이칭/별칭 군보(君輔),조곡(棗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전삼익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22년연표보기 - 전삼익 사망
묘소|단소 전삼익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 장포산(長浦山) 기향(己向)
추모 조곡정(棗谷亭)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조동마을 지도보기
성격 무인
성별
본관 용궁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전삼익(全三益)의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군보(君輔), 호는 조곡(棗谷)이다. 고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과 감찰(監察) 등을 역임한 전회옥(全懷玉)이며, 증조는 참봉(參奉) 전언(全彦), 조부는 전희상(全希祥),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전몽룡(全夢龍)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함양 박씨(咸陽 朴氏)로 도사(都事) 박등(朴登)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영일 정씨(迎日 鄭氏)로 정용(鄭容)의 딸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아들은 통덕랑(通德郞) 전이성(全爾性)이며, 사위는 정사도(鄭師道)이다.

[활동 사항]

전삼익은 1566(명종 21)에 태어났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향교의 다섯 분의 성위판(聖位版)을 자양 성현암(聖賢岩)에 받듦으로써 병화(兵火)를 면하였고, 아우인 전삼성과 더불어 의병진에 나아가 적을 무찔렀다.

조정에서 그의 공을 인정하여 첨정(僉正)으로 제수하여 원종공신에 기록되었다. 봉화 현감이 되어 다스림에 공정하고 맑아 아전과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기렸으며, 후에 무과에 올랐다.

울산과 동래의 소모별장(召募別將)이 되어서 8년간 두 진을 회복하고 군정을 보살피는데 힘을 다하였다. 그러나 수토병(水土病)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1622년(광해군 14)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전삼익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형제봉(兄弟峰) 아래에 있었으나 현재는 영천시 매산동(梅山洞) 장포산(長浦山)에 기향(己向)을 마주하고 있으며, 승지(承旨) 정간(鄭榦)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영천시 녹전동(錄田洞) 조동(棗洞)마을에 후손들이 추모하여 세운 조곡정(棗谷亭)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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