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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151
한자 劉荃
이칭/별칭 원보(原甫),죽간(竹諫),문양(文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051년 4월 8일연표보기 - 유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122년 2월 7일연표보기 - 유전 사망
출생지 유전 - 중국 강소성
묘소 유전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성격 시조
성별
대표 경력 병부상서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시조공 묘소가 있는 유(劉)씨의 시조.

[가계]

유전(劉荃)의 자는 원보(原甫), 호는 죽간(竹諫), 시호는 문양(文襄)이며, 한(漢)나라 태상황(太上皇)의 후손으로 1051년 4월 8일 중국 강소성(江蘇省)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한림(翰林)을 지낸 유종(劉宗)이며, 조부는 이부상서(吏部尙書) 유적(劉迪), 부친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유채(劉采)이다.

부인은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농서 이씨(隴西李氏)로 슬하에 3남을 두었다. 큰아들 유견규(劉堅規)는 봉익대부도첨의찬성사(奉翊大夫 都僉議贊成事)로 거타군(居陀君)[거창군(居昌君)]에 봉작(封爵)되고, 둘째아들 유견구(劉堅矩)[아림파]는 광정대부밀직사사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셋째아들 유견익(劉堅益)[배천파]은 봉익대부 이조판서 대사헌을 지냈다.

유견규는 거창군(居昌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거창으로 하여 거창 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유견규의 11세손인 유창(劉敞)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강릉]에 봉해지면서 다시 유창을 중시조로 하는 강릉 유씨가 파생되었다.

또한 유견익의 7세손인 유국추(劉國樞)는 배천군에 추봉되어 후손들이 배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어 배천 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활동 사항]

유전은 천성(天性)이 어질고 강직하여 바른 직언(直言)을 삼가 하지 아니하고 불의(不義)와는 타협을 하지 않는 곧은 성품이었다. 또한 학문이 깊고 넓어 통달(通達)하지 아니한 서적(書籍)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할 만한 큰 인재다” 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송나라 신종(神宗) 때에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재임 중에 각종 간언(諫言)이 오히려 간신들의 모함을 입자, “진실한 직언을 용납지 않는 이 땅에서는 더 머물 수 없다”하고, 평소 뜻을 같이하던 동지칠학사(同志七學士) 임팔급(林八及)·설인검(薛仁儉)·허동(許董)·송규(宋奎)·최호(崔沍)·권지기(權之奇)·공덕수(孔德狩)와 더불어 1082년(고려 문종 36)에 바다를 건너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이르렀다.

문종(文宗)이 수차 측근을 보내어 벼슬길에 나오도록 권유하였으나 가난함에 만족하고 오직 유도(儒道)를 정도(正道)로 삼아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데 전심전력을 하다가 1122년(고려 예종 17) 2월 7일에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유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석촌(石村)에 해좌(亥坐) 향으로 있으며, 창녕(昌寧) 조규승(曺逵承)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인 구인재(求仁齋)가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04 내용 수정 [한자명] 劉筌 → 劉荃 --------------------------- [가계] 劉筌 → 劉荃
이용자 의견
유** 유전의 전자는 (荃) 입니다.
  • 답변
  • 디지털영천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에 대하여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의견 개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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