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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229
한자 鄭琚
이칭/별칭 공로(公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49년 - 정거 생원시에 급제
묘소|단소 정거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형제봉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고천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길 12-227 형제봉 아래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일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영천시 도동]에 옮겨 살았다.

[가계]

정거(鄭琚)의 자는 공로(公璐)이며, 고조는 정문비(鄭文備)이며, 증조는 진의부위(進義副尉) 정경치(鄭卿緇), 조부는 참봉(參奉) 정문영(鄭聞英)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정세홍(鄭世弘)이며, 어머니는 원주 원씨(原州元氏)로 만호(萬戶) 원영정(元永貞)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의인(宜人) 인천 채씨(仁川蔡氏)로 찰방(察訪) 채징(蔡澄)의 딸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정랑(正郞) 정삼변(鄭三變)이며, 사위는 경주인(慶州人) 김영(金瑩)이다. 둘째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경란(朴景鸞)의 딸로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통사랑(通仕郞) 정삼근(鄭三近)이며, 사위는 안동인(安東人) 권극립(權克立)과 달성인 서경택(徐景澤)이다.

[활동 사항]

정거는 1549년(명종 4)에 생원(生員)이 되었다. 고을 원 심의검(沈義儉)이 감히 대성전(大成殿) 앞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 재료로 삼았기에 소암(小庵) 노수(盧遂)와 더불어 향유(鄕儒)를 이끌고 글을 지어 문묘(文廟)에 아뢰기를, “아! 공자님이시여! 또 다시 벌수(伐樹)를 만났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심 군수가 감사에게 거짓 보고를 하여 조정에 아뢰니 전가사변(全家徙邊)의 법에 해당시켰는데, 대사헌(大司憲) 추파(秋坡) 송기수(宋麒壽)가 경연(經筵)에서 세 차례나 상주하여 면할 수 있었다.

문정공(文貞公) 손순효(孫舜孝)가 관찰사가 되었을 때 포은(圃隱)의 정효각[포은 정몽주 유허비]을 중건하게 하자, 정거가 실제로 관장하였으며 기문을 저술하니 지금까지 남아 있다. 또한 노수(盧遂)와 족친(族親)인 정윤량(鄭允良)·김응생(金應生)과 더불어 임고 서원(臨皐書院)을 창건하여, 유풍을 진작하고 후진을 장려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삼았다.

[묘소]

정거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臨皐面) 고천리(古川里) 형제봉(兄弟峰)에 있으며, 풍산(豊山) 유석우(柳奭佑)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인 고천재(古川齋)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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