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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232
한자 成以直
이칭/별칭 여방(汝方),경재(敬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8년연표보기 - 성이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7년 - 생원 합격
묘소|단소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만천정사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창녕
저술 『경재집고(敬齋輯稿)』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성이직(成以直)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방(汝方), 호는 경재(敬齋)이다. 고조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의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성영준(成永俊)이며,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성열(成烈), 조부는 선무랑(宣務郞) 성익수(成益壽)이다.

임진왜란 때 곽망우당(郭忘憂堂)의 의진에 참전하였던 아버지 성립(成立)과 참봉 신덕봉(辛德鳳)의 딸인 어머니 영월 신씨 사이에서 1578년(선조 11)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복재(復齋) 정담(鄭湛)의 딸인 부인 영일 정씨[오천 정씨]와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성호(成昈)와 성은이며, 사위는 정호신(鄭好信)이다.

[활동 사항]

성이직은 1617년(광해군 9) 생원에 합격하였으나, 당시 혼미한 조정(朝廷)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로 나아갈 뜻을 접고 은둔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을 수집(蒐集)하니, 성이직도 학행이 뛰어나 천거되어 도원도(桃源道) 찰방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후 성이직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마한 재실인 경재(敬齋)를 짓고 독서와 수행에 힘썼으며, 창·문간·담장·벽 등에 명(銘)이 있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연구하는 붓·안석(安席)·지팡이에도 또한 모두 경구(警句)가 있었으니, 가히 혼자 있을 때는 삼가며 공부하고, 고요함을 법으로 삼은 진정한 선비라고 칭송이 높았다.

[학문과 저술]

석판본으로 된 『경재집고(敬齋輯稿)』 1권 1책이 있다.

[묘소]

성이직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뒷산에 건좌(乾坐) 향으로 있으며, 판서 성원묵(成原黙)이 찬한 비명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北安面) 신리리만천정사가 있으며, 정사에는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의 기문과 서강(西岡) 전삼성(全三省)의 경재 기문(敬齋 記文)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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