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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253
한자 金孝達
이칭/별칭 원언(源彦),석정(石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0년연표보기 - 김효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90년 2월 29일연표보기 - 김효달 사망
묘소|단소 김효달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칠전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경주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김효달(金孝達)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언(源彦), 호는 석정(石亭)이다. 김효달의 고조는 훈도(訓導) 김두연(金斗年)이며, 증조는 참봉(參奉) 김건(金乾), 조부는 증(贈) 형조 정랑(刑曹正郞) 김대해(金大海)이다. 부친은 김정(金靖)이며, 모친은 월성 정씨(月城鄭氏)로 참봉(參奉) 김광업(金光業)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생원(生員) 정사물(鄭四勿)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영양 최씨(永陽崔氏) 최홍의(崔弘義)의 딸이고, 셋째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정해(金正海)의 딸이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니 아들은 김경우(金慶祐)·김경지(金慶祉)·김경초(金慶初)·김경조(金慶祚)·김경린(金慶麟)이며, 사위는 현풍인(玄風人) 곽수고(郭壽高)이다.

[활동 사항]

김효달은 1610년(광해군 2)에 태어나 1690년(숙종 16) 2월 29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이 깊고 품행과 도의를 겸비한 그는 초상을 맞아 여묘살이에 정성을 하였다. 벼슬은 참봉(參奉)이며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차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황폐화된 농토로 고통 받는 이웃을 보고는 사재를 털어 1654년(효종 5)에 칠전제(漆田堤)를 막고, 1667년(현종 8)에 북안면(北安面)에 마현제(馬峴堤)를 막는 등 7개의 못을 축조하니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묘소]

김효달의 묘소는 영천시 고경면(古鏡面) 칠전리(漆田里) 제내(堤內)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천시 북안면(北安面) 관리(冠里) 마현제(馬峴堤) 못 둑 아래 ‘석정경주김공효달마현제설창기(石亭慶州金公孝達馬峴堤設創記)’란 비를 세워 업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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