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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274
한자 安處宅
이칭/별칭 인백(仁伯),동오(桐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05년연표보기 - 안처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 안처택 사망
출생지 안처택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안처택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순흥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개설]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의 상계는 알 수 없으며, 당시 흥녕(興寧)[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살게 된 후 후손들이 정주하여 순흥(順興)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안자미의 아들 3형제인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영화(安永和)를 각각 파조로 하여 크게 1, 2, 3파로 분파되었으며, 다시 1파는 14개파, 2파는 4개파, 3파는 4개파 등 총 22파로 분파되었다. 영천 입향조는 찰방(察訪) 안우곤(安遇坤)이다.

[가계]

안처택(安處宅)의 자는 인백(仁伯), 호는 동오(桐塢)이며, 1705년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안응의(安應義)이며, 증조는 안진한(安振韓), 조부는 안순종(安順宗)이다. 아버지는 안천보(安天輔)이며,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유천병(柳天柄)의 딸이다. 부인은 용궁 전씨(龍宮全氏)로 전만령(全萬齡)의 딸이며, 슬하에 아들 안국신(安國臣)·안국빈(安國賓)·안국열(安國說)이 있다.

[활동 사항]

안처택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우아단정(優雅端正)하고 지혜가 총명하여 6세 때 이미 통감(通鑑)과 사기(史記)를 글방에서 외워 쉽게 암송함으로 사람들이 동해명주(東海明珠)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또한 학문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자라면서 학문의 참다운 진리에 더욱 심취하여 의심나는 데가 있으면 언제나 깨닫지 않고서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또한 항상 학문은 오직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이룩됨을 스스로 생각하였다.

학문이 성장하면서 횡계서당(橫溪書堂)을 찾아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의 문하에서 수학 강도하여 경전 뜻과 유결(遺訣)에 정진함으로써 학문은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정중기(鄭重器)정간(鄭榦), 조용석(曺龍錫)과는 학문과 인간관계에서 각별하였다.

1728년 3월에 호서(湖西)에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소탕하여 대의를 밝히려는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의병(義兵) 봉기에 동참하여 탄충효절(殫忠孝節)의 기치를 올렸다. 스승이 돌아가신 후에 고향마을 동산(桐山)에 동오서재(桐塢書齋)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수양하며 후진양성으로 평생을 보냈다.

안처택은 1775년(영조 )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5권 2책의 『동오집(桐塢集)』이 있다.

[묘소]

안처택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노방 진목 등에 해좌(亥坐)향으로 위치하며, 이의덕(李義悳)의 갈문(碣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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