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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중 처 여주 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68
한자 安瑞重妻驪州李氏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779년 - 안서중 처 여주 이씨 급복됨
묘소|단소 안서중 처 여주 이씨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직천리 임하동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여주

[정의]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가계]

열녀 여주 이씨(驪州李氏)는 판관(判官) 이태주(李泰周)의 딸이며, 남편은 안서중(安瑞重)이다. 안서중의 자는 공신(公信)이며, 아버지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안경시(安景時)와 최남걸(崔南杰)의 딸인 어머니 월성 최씨(月城崔氏) 사이에서 1738년(영조 14)에 태어나 1777년(정조 원년) 11월 26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안효석(安孝錫), 사위는 여주인(驪州人) 이인상(李寅祥)이다.

[활동 사항]

열녀 여주 이씨(驪州李氏)는 평소 효순(孝順)으로 칭송되었다. 1777년에 남편이 병을 만나 신음하였는데,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원하오니 “내 몸으로 대신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남편이 죽자 단지 곡소리 몇 번하고는 조용히 그 늙으신 시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습렴과 함반(含飯)의 도구들을 친히 스스로 말없이 점고하면서, 남몰래 하나의 작은 편지에 경계하는 글을 써서 옷의 띠 가운데 매어두어 그 자녀들에게 남겨두고 약을 먹고 죽었으니, 곧 성복(成服)[상복을 입음]하는 날이었다.

[묘소]

열녀 여주 이씨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직천리 임하동(林下洞) 구룡산(九龍山) 북록(北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79년(정조 3)에 이 사실이 알려져 급복(給復)[조세와 부역을 면제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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