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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번 충노 억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74
한자 鄭宜藩忠奴億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조선 전기 - 억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억수 임진왜란 때 영천성 및 경주성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움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억수 사망
묘소 억수의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하천(夏泉) 백암공 묘소 아래지도보기
성격 충노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의 노비.

[활동 사항]

임진왜란 때 영천 지역의 의병들은 영천성 탈환의 여세를 모아 경주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정의번은 늘 앞장서서 적을 공격했고, 그의 종 억수는 충실히 주인을 보필했다. 그러나 적군이 기병을 투입하여 아군의 뒤쪽을 공격하고, 앞쪽에 매복했던 병사들이 일시에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주력부대인 관군이 잠시 후퇴하자 진영은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 바람에 정의번은 아버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와 떨어져 사방으로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자 다시 적진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습격을 하였다.

이 틈을 타서 아버지 정세아는 포위망을 벗어났으나 이 사실을 모르는 정의번은 온몸이 창에 찔리면서도 적진 속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매었다. 이렇게 적진을 수차례 드나들며 고군분투하였으나 수적 우세인 적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적진을 향해 쳐들어 갈 때 종인 억수에게, “아버지는 이미 전사하신 것이 분명하니 내가 어디로 돌아가겠느냐? 너는 나와 관계없이 떠나거라”하니, 억수가 말고삐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주인님이 아버지를 위해 죽기를 결심하셨는데, 소인이 어찌 차마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하며 함께 진격을 했다.

사방으로 적에게 포위를 당한 정의번은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고, 억수 또한 주인과 같이 전사를 하였다. 후에 시신을 찾아 정의번의 묘소 아래 무덤을 만들고 지금까지 묘사를 올리고 있다.

[묘소]

억수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하천(夏泉) 정의번의 묘소 아래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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