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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81
한자 鄭煥國
이칭/별칭 공좌(公佐),노전(老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 3월 13일연표보기 - 정환국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78년 6월 10일연표보기 - 정환국 사망
출생지 정환국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묘소|단소 정환국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일
저술 『노전문고(老田文稿)』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정환국(鄭煥國)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공좌(公佐), 호는 노전(老田)이며, 1901년(고종 38) 3월 13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서 태어나 1978년 6월 10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치인(鄭致仁)이며, 증조는 정동진(鄭東鎭), 조부는 정연달(鄭淵達)이다. 아버지는 정원화(鄭元和)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로 강진흠(姜晋欽)의 딸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 黃氏)로 황규익(黃圭益)의 딸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정일균(鄭一均), 사위는 손일호(孫一鎬)이다.

[활동 사항]

정환국은 6세에 고모부 묵암(默庵) 박시주(朴時澍)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17세에 삼종조 내암(耐菴) 정연박(鄭淵博)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과 덕행으로 유림의 덕망이 높아 향교와 서원에 여러 번 수임(首任)을 맡아 성현을 경모하고 도를 숭봉함이 남달리 뛰어나 향중에 추중(推重)되었다.

또한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이 살아계실 제 정성을 다해 봉양하고 돌아가심에 예(禮)로서 3년상을 마쳤다. 만년에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진력하고, 후손 또한 학업에 충실하며 팔순이 되어도 강녕하니 주변에서 ‘복(福) 노인’이라 칭하였다.

[학문과 저술]

석판본인 7권 1책의 『노전문고(老田文稿)』가 있다.

[묘소]

정환국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 직동(直洞) 우곡제내(右谷堤內) 장등(長嶝) 도기룡(倒起龍) 정좌(丁坐)향으로 있으며, 이채진(李埰鎭)의 갈문(碣文)이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5.02 인명 오류 수정 정희윤 -> 정원화(鄭元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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