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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05
한자 金基用
이칭/별칭 김명숙(金明淑),명숙(明淑),사실(士實),능백(能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5월 13일연표보기 - 김기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김기용 화목천세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연표보기 - 김기용 영천에서 지하 활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김기용 영천경찰서 및 친일부호 척결거사 모의 중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938년 7월 26일연표보기 - 김기용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김기용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5월 - 김기용 추모비 건립
출생지 김기용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오사리
거주|이주지 김기용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김녕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기용(金基用)의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이며 호는 능백(能伯)이고, 김명숙(金明淑)이라고도 불린다. 1883년(고종 20) 지금의 경북 청송군 현동면 오사리에서 태어나 1919년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거하였으며 1938년 세상을 떠났다.

[활동 사항]

김기용은 1919년 3월 25일 청송 진보시장에서 권태원(權泰源)을 도와 만세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튿날 현서면 조현욱(趙炫郁)·조병국(趙柄國) 등과 함께 화목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피체되어 3개월간 구금되었다.

석방된 후 김기용은 지금의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주하였으며,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張鎭弘)과 회합하여 1928년 결사대원이 되었다. 그는 영천경찰서와 친일 부호인 이인석(李仁錫)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장진홍으로부터 폭탄 2개를 전달받아 투척을 위한 예행 연습을 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0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예비죄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장진홍이 옥중에서 변사하자, 그 경위를 밝힐 것을 요구하며 옥중 투쟁을 전개하다가 건조물 파괴 죄로 8개월의 가중처벌을 받고 1935년 12월에 만기 출소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 5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서부동 마현산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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