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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15
한자 李範敎
이칭/별칭 이상백(李相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7월 27일연표보기 - 이범교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8년 3월 - 이범교 대구 계성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12년 9월 - 이범교 대구 동산병원 의학부 4년 수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이범교 대구에서 만세 시위 운동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 이범교 임시정부산하 교통부 교통위원으로 임명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 이범교 경북 특파원으로 임명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2월 - 이범교 러시아령 니코리스크시에 배영학교 설립 민족교육운동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51년 12월 29일연표보기 - 이범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범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4년 12월 - 이범교 추모비 건립
출생지 이범교 - 대구광역시 남산동
거주|이주지 이범교 -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 72 지도보기
활동지 이범교 - 중국|러시아
묘소 이범교 - 화장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경력 동산병원장|임시정부 교통부 위원|제헌국회의원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범교(李範敎)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영천시 과전동으로 이거하였으며 1951년 세상을 떠났는데, 이명(異名)은 이상백(李相伯)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아버지는 이종하(李淙夏), 어머니는 김해 김씨 김정원(金正元)으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범교는 대구에서 동산병원을 개업하여 의료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시위에 참가했으며, 일경의 지명수배를 피하여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에 임시정부에서 국내외를 연결시키며 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교통부의 교통위원으로 피선되었다. 당시 교통부에서는 정보의 수집·검토·연락과 기밀문서의 교환 등 통신 업무에 치중하는 한편 독립 운동 자금 모금은 물론 인재 발굴 및 양성의 임무도 겸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중요한 임무를 띠고 1919년 7월에 임시정부 경북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귀국하여 활동을 전개하다가, 그해 11월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봉천 등지에서 국내 출입 안내역과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또한 러시아령(領) 니코리스크 시에 배영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 계몽사상을 교육시켰다. 배영학교 운영 당시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이 약 6개월간 훈련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보다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4년 12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서부동 화룡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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