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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845
한자 建築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청정리 유적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지도보기
소재지 신리리 유적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지도보기
소재지 수성리 건물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지도보기
소재지 신광리 유적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개설]

건축은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준비하여 제공해 주는 것으로, 사람에 의해 점유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특히 한 지역의 건축 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활동의 프로세스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천 지역의 건축 형태 및 성격은 기후와 지리, 산출 재료 등 자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인간 경험의 연관 관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또한 각 시대 및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아 그 시대의 정신과 사회적 환경 및 문화 현상[풍습·신앙·사상·종교·취미 등]이 반영된 여러 가지 형태와 특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영천 지역의 건축 역시 지역의 고유한 풍토를 토대로 한 각 시대별 사회적·문화적 조건과 생업 및 경제적 조건에 순응하는 다양한 건축 유형이 자생하여 진화해 왔다.

영천 지역의 선사 시대 건축은 발굴 유적을 통한 수혈 주거지, 고상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절터 및 사찰 등의 불교 유적, 산성 등의 관방 유적이 유독 많다.

조선 시대에는 사찰·주거·유교·관방·누정·재실·정려·단묘 등 이전 시기와는 다른 다양한 건축 유적이 남아 있어 당시 영천의 정주 위상과 그에 상응하는 건축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

또 근대에 이르러서는 교회 건물, 중앙선대구선이 관통하는 곳에 철도 역사와 관사, 일식 가옥 등이 곳곳에 남아 영천의 사회 및 인문 역사 문화를 말해 주고 있다.

[선사 시대 건축]

선사 시대 건축 유적은 청동기 시대 수혈 주거지가 발굴 조사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청정리 유적, 북안면신리리 유적 등이 알려져 있다. 이곳 수혈 주거지는 평면이 장방형이고, 중앙에 주혈, 외곽에 벽구를 갖춘 것으로 대구 등지의 같은 시기 주거지와 맥락성을 갖고 있다.

특히 영천 지역은 지리적으로 금호강(琴湖江)을 비롯해 신녕천·고현천·자호천·북안천·대창천 등의 유역에 분포하는 고인돌 축조 집단을 고려할 때 당시 상당한 취락이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원전·후의 원삼국 시대에는 대구·경산 지역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금속 문화의 유입되어 금호강 유역의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신라 3대사(三大祀) 장소의 하나이면서 사로국(斯盧國)에 버금가는 정치 집단으로 성장한 골벌국(骨伐國)이 있었던 곳으로 여러 가지 선사 유적이 남아 있다.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 건축]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건축 유적은 영천시 임고면의 수성리 건물지에서 고래 시설이 확인되었고, 대창면의 신광리 유적에서 고상식 건물지 등 건물지 유적을 비롯해 절터·석탑·산성 등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영천 지역의 폐사지 및 불교 유적으로는 화북면 법화리법화리 절터, 상용암(上聳菴), 금호읍신월리 삼층 석탑, 신녕면왕산리 절터, 금호읍 봉죽리죽림사(竹林寺),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 신녕면 화남리 석조 여래 좌상이 있고,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 삼층 석탑은 2층 기단에 신라의 전형적 양식을 보여 준다.

[고려 시대 건축]

영천 지역의 고려 시대 불교 유적으로는 화북면공덕리 절터, 공덕동 삼층 석탑, 정각리사지, 정각리 삼층 석탑, 대창면의 용호리사지, 청통면은해사(銀海寺) 중암암(中巖庵) 삼층 석탑 등이 있다. 고려 시대 건물로는 1375년(우왕 원년)에 창건한 은해사 거조암(居祖庵) 영산전(靈山殿)이 대표적이다.

[조선 시대 건축]

1) 불교 건축

조선 시대 불교 건축으로는 산지 가람의 전형을 보여 주고 인종의 태실 수호 사찰로 1546년(명종 1)에 건립된 은해사 백흥암(百興庵) 극락전(極樂殿), 불단의 백미인 은해사(銀海寺) 백흥암(百興庵) 수미단(須彌壇),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고 조선 중기 다포계 형식을 잘 갖춘 거동사(巨洞寺) 대웅전, 1774년(영조 50)에 중수한 영지사(靈芝寺) 대웅전 및 범종각(泛鐘閣), 19세기 중엽에 중창된 은해사(銀海寺) 대웅전 등이 있다.

2) 유교 건축

조선 시대 유교 건축으로는 1435년(세종 17)에 건축하고 수차례 수리한 교촌동영천 향교(永川鄕校) 대성전(大成殿), 조선 초 문신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자양면 용산리용계 서원(龍溪書院), 1546년(명종 원년) 김응생(金應生)·정윤량(鄭允良)·이의(李艤) 등이 향리의 후진 교육을 위해 건립한 임고면 삼매리자양 서당(紫陽書堂), 1515년(명종 6) 중수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향교 뒤편에 중건했다가 1686년(숙종 12) 현 위치로 이건한 신녕면 화성리신녕 향교(新寧鄕校) 명륜당(明倫堂), 고려 후기 학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553년(명종 8) 창건하여 1965년 복원한 임고면 양항리임고 서원(臨皐書院),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하여 순국했던 영천 지역 의병들을 제향하는 임고면 고천리고천 서원(古川書院), 선조 때 학자인 조호익(趙好益)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1612년(광해군 4) 창건한 대창면 용호리도잠 서원(道岑書院) 등이 있다.

3) 주거 건축

영천 지역의 조선 시대 주거 건축으로는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李順蒙)이 1433년(세종 15)에 살림집으로 지어졌고, 현재는 장군의 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내동숭렬당(崇烈堂),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가 짓기 시작하여 둘째 아들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한 전형적인 ‘ㅁ’자형 상류 주택에 누마루형 사랑채가 돋보이는 임고면 삼매리매산고택 및 산수정(山水亭), 1725년(영조 원년)에 튼 ‘ㅁ’자형 본채와 별당인 연정으로 이루어진 임고면 선원리정용준(鄭容俊) 씨 가옥, 심부(心夫) 조학신(曺學臣)의 집으로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건축 양식과 주생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금호읍 오계리만취당(晩翠堂)이 대표적이다.

4) 누정

강호정(江湖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인 정세아(鄭世雅) 장군이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1599년(선조 32) 용산동에 창건한 정자인데, 영천댐 건설로 1977년 3월 현 장소로 이전·복원하였다. 삼휴정(三休亭)삼휴(三休) 정호신(鄭好信)이 학문 증진을 위해 1635년(인조 3)에 건립한 것으로 1977년 3월 영천댐 공사로 현 위치에 이전, 복원했다.

조양각(朝陽閣)금호강변에 있는데, 명원루(明遠樓) 또는 서세루(瑞世樓)라고도 부르며, 1368년(고려 공민왕 17) 당시 부사 이용(李容)이 포은 정몽주와 함께 지은 건물이다. 1482년(성종 13) 부분 수리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인조 15) 군수 한덕급(韓德及)이 새로 지어 이름을 조양각이라 했다.

[근대 건축]

근대 건축은 대구선중앙선과 관련된 철도 역사와 철도 공무원의 집단 주거지인 관사, 영천 개신교 전파의 초기 건축적 양식인 한옥 교회당 건물인 자천 교회, 영천시내에 잔존하는 일본식 건물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철도 역사로는 금호역사신녕역사가 있고, 철도 관사는 금호역 관사와 신녕역 관사, 화산역 관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역사는 삼각형 박공면이 한쪽에 치우쳐 정면을 강조하는 1930년대 이후의 보편적인 역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철도 관사는 평면 유형이 당시 등급별로 제시된 표준 설계도에 근거해 직급 및 가족 수에 따라 제시된 7등급 위주로 건축되었다.

자천 교회는 초기 한옥형 교회당의 원형을 보여 주는 우진각 목조 단층 건물이다. 특히 전통 목조와 지붕 트러스의 조합이 돋보이는 지붕 가구와 남녀를 구분한 예배석의 설치, 온돌방 등 개신교 선교 초기의 시대적·건축적 상황과 교회 건축의 토착화 과정을 잘 반영하고 있는 근대 교회 건축의 선구이다.

[현대 건축]

현대 건축은 근대 이후 양옥을 비롯해 새로운 도시 주거 문화를 선도하는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양옥의 단독 주택은 새마을 운동 이후 건립되기 시작해 새로운 주거문화를 선도했고, 1980년대부터 아파트·연립·다세대 주택 등 새로운 건축 문화가 조성되었다.

영천 지역의 아파트는 1980년 12월 12일에 야사동 184번지에 철근 콘크리트조의 5층 14개 동, 470세대를 수용한 ‘문화 아파트’가 최초로 건축된 이후 1990년까지 영천시 야사동·화룡동·완산동·언하동·교촌동·문외동 등지에 지속적으로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1990년 이후부터는 금호읍·신녕면·고경면 등지에도 아파트가 건립되는 등 본격적으로 아파트 주거 문화가 자리 잡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및 건축 경기의 둔화로 아파트 건축이 크게 위축된 상태이나 현재 52개 아파트 단지에 180동, 14,101세대가 있어 현대 주생활에 맞춘 도시 주거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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