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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245
한자 早紅詩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00년 - 박인로 「조홍시가」창작 시작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01년연표보기 - 박인로 「조홍시가」발표
관련 사항 도계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지도보기
관련 사항 노계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지도보기
성격 시조
작가 박인로

[정의]

조선 시대 영천 출신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시조.

[개설]

「조홍시가(早紅詩歌)」는 일반적으로 『노계선생문집』의 기록을 보고 1601년 한음 이덕형노계에게 조홍감을 보내오자, 노계가 이 조홍감을 보고 느낀 감회를 4수의 평시조 형식에다 담은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자료의 발견에 의하면, 4수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은 1600년 경 여헌 장현광으로부터 조홍감을 대접받고 그의 명에 따라 지은 것이고, 나머지 3수는 1601년 9월 한음 이덕형이 첫 번째 작품을 보고 몇 수 더 짓도록 하라는 권유에 의해 지었다는 진전된 연구가 있다.

노계 박인로는 1561년에 출생, 1642년에 몰하였고 현재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도계서원에 위패를 봉안하고 묘소도 바로 옆에 있다.

[구성]

『노계가집』·『노계선생문집』 등 과거 문헌에는 「조홍시가」라는 제목 아래 4수의 평시조를 수록하고 있어서 표면적으로 볼 때 「조홍시가」는 4수의 평시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첫 수와 나머지 세 수의 창작 시기와 창작 동기가 다르므로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은 성격을 달리하는 1수의 평시조와 3수의 평시조가 한 곳에 모여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창작 동기와 성격이 다른 이 작품들을 합쳐 「조홍시가」라 부를 수 있는지도 다소 의문이다.

[내용]

「조홍시가」는 효도라는 유교 윤리를 시적 구도 속에 감성적인 언어로 포착한 것이며, 그 가운데 첫째 수를 현대말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 길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특징]

「조홍시가」는 효도라는 유교 윤리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 널리 창작된 오륜가(五倫歌) 계열의 시조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작자 스스로가 화자가 됨으로써 유교 윤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첫째 수는 구체적인 상황, 색채어와 고사의 적절한 사용 등을 통하여 어버이를 섬길 수 없는 심정을 가슴 뭉클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홍시가」 첫째 수는 효도를 주제로 한 우리나라 고전시가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오랜 기간에 걸쳐서 국어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국민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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