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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259
한자 陋巷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96년연표보기 - 박인로 「누항사」 창작[추정]
배경 지역 박인로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지도보기
성격 가사작품
작가 박인로

[정의]

경상북도 영천 북안 출신인 조선 시대의 문인이며 시가 작가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가사 작품.

[개설]

박인로[1561~1642]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출생이며, 「조홍시가(早紅柹歌)」·「五倫歌(오륜가)」·「입암가(立巖歌)」 등 70여 편의 시조를 남긴 걸출한 시조작가였다.

「누항사」는 1690년 한음 이덕형의 증손 이윤문이 영천군수로 재직할 때 영천에서 간행한 『영양력증』에 최초로 수록되어 있는데, 후대에 간행된 『노계집』「누항사」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노계집』「누항사」에서는 『영양력증』의 그것과는 달리 사대부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을 아예 삭제해버리거나 노골적인 표현을 완화하여 부드럽게 표현한 것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누항사」는 대부분 문집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으나, 이제 원본에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는 「누항사」가 수록된 『영양력증』이 발견되었으므로, 앞으로의 「누항사」 연구는 『영양력증』에 수록된 작품을 대본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까지 별다른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항사」가 창작된 시기를 「사제곡」이 지어진 1611년으로 추정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작품의 창작시기는 1596년경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누항사」에 포함되어 있는 “병과오재(兵戈五載)예 감사심(敢死心)을 가져 이셔“라는 대목을 음미해볼 때,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시작된 지 5년째 되는 1596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판단에 드높은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은 “칠재(七載)를 분주(奔走)타가 태평(太平) 오날 보완지고“ 라는 노계의 「태평사」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말하는 칠재(七載)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년째 되는 1598년에 해당되는데, 그것은 실제로 「태평사」의 창작 연대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바와는 달리 노계가 지은 최초의 가사는 「태평사」가 아니라 「누항사」라고 생각되며, 노계한음이 처음 만난 것도 1601년 한음노계 마을 인근에 있는 시조(始祖)의 묘에 제사를 지내러 갔을 때가 아니라 최소한 1596년경부터로 추측된다.

[내용]

「누항사」는 내용에 따라 모두 7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절대적으로 궁핍한 상황이지만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분수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노래했다.

둘째 단락에서는 악전고투했던 임진왜란을 회상하고, 궁핍한 삶 속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살려는 마음을 표현했고, 셋째 단락에서는 농사를 지으면서 살려고 하나 농사지을 소가 없어서 상심하는 내용이다.

넷째 단락에서는 이웃집에 소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당하고 돌아오는 기막힌 상황을 묘사했으며, 다섯째 단락에서는 야박한 세상인심을 한탄하며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서술했다.

여섯째 단락은 임자 없는 자연을 벗 삼아 자연 속에 늙어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며, 일곱째 단락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유교적 윤리를 지키면서 오연히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누항사」는 절대적인 궁핍에 시달리더라도 안빈낙도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학자적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누항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절대적인 궁핍에 시달리던 작자 자신[혹은 동시대 사람들]의 구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은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이의 유유자적한 심정을 표출한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등 조선 전기 사대부들의 가사와는 전혀 다르다.

소재와 내용의 변화뿐만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누항사」는 그 이전까지의 가사와는 크게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송강 정철의 가사에서 볼 수 있는 미려하고 세련된 표현 대신에 노계「누항사」에서 대화체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땀 냄새가 나는 언어들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표현의 사실성과 문체의 생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누항사」는 주자학적 세계관이 중심을 이루던 조선 전기의 가사에서 서서히 벗어나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였던 조선 후기 가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누항사」는 조선 전기와 후기 가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문학사적 의의도 바로 여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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