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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267
한자 三省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세기 말 - 손만진, 모재를 삼성재로 편액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5년경연표보기 - 삼성정 중건
현 소재지 삼성정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초익공|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5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무인 손만진(孫萬禛)이 거처하던 정자.

[개설]

손만진[1639~1699]의 본관은 밀양, 자는 회응(會應), 호는 삼성재(三省齋)이며,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합격해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낙향해 모재(茅齋)에 ‘삼성(三省)’이라 편액하고 효행과 학문을 닦으며 후학에 힘썼다. 묘소는 고경면 파계리에 있다.

[위치]

삼성정(三省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포항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면 고경면소재지 직전의 도로 좌측에 고경농공단지가 있고 단지 옆으로 상리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상리리 배골마을 상단부 도로변에 삼성정이 있고 서쪽 언덕에 상체정이 보인다. 삼성정 동쪽 개천 너머에는 학리 동오정이 있다.

[변천]

삼성정손만진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그가 평소 지내왔던 모재(茅齋)[초가집으로 된 작은 정자]를 삼성재로 편액(扁額)한 것이 삼성정의 처음 건물이다. 정확히 언제 편액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손만진이 무과에 합격한 해인 1676년에서 죽기 전인 1699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후에 무너진 것을 후손 손병열(孫炳悅)이 문중과 협의해 1955년경에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삼성정은 언덕에 방형의 토담을 두르고 중앙에 ‘一’자형의 정자를 남서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의 대청 두 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드린 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퇴 가장자리에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나머지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진입은 측면 진입이다.

창호는 좌측 청방 간에만 사분합문을 두었고 우측에는 쌍여닫이 굽널 세살문으로 처리했다. 대청 뒤로는 판벽에 쌍여닫이 판문[당판문]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구조는 퇴 칸에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는데 퇴칸 주 상부는 허접한 초익공으로 꾸미고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이엇다.

[현황]

삼성정은 경사진 능선에 대지를 조성하고 민가 사이에 있다. 삼성정에는 대문이 없이 담장이 두 군데 개방되어 있다. 정자 정면 상부에는 ‘삼성정(三省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지붕 내림마루 끝에 일식 망와가 있고 막새와 아구토[처마 끝 수키와 하단을 막는 흙]가 없어 홍두께흙[수키와 안쪽에 집어넣는 흙]이 흘러내리고 있다. 삼성정 앞의 골목길을 따라 산 쪽으로 오르면 상체정이 나온다.

[의의와 평가]

삼성정은 건립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고 허접한 초익공 등의 1950년대 기법이 보여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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