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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귀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279
한자 安龜鍊
이칭/별칭 영근(泳根),죽남(竹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7년연표보기 - 안귀련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안귀련 사망
묘소|단소 안귀련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순흥
저술 『죽남유고(竹南遺稿)』

[정의]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안귀련(安龜鍊)의 본관은 순흥. 자는 영근(泳根), 호는 죽남(竹南)으로, 1867년(고종 4)에 태어나 삼종숙(三從叔) 안기명(安基明)에게 출계하여 1941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안국윤(安國尹), 증조는 안경동(安擎東), 조부는 안기문(安器文), 아버지는 안기일(安基鎰), 어머니는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기윤(李基潤)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주사(主事) 권봉현(權鳳鉉)의 딸이며, 슬하에 안용락(安庸洛)과 경상북도 농산과장 안범락(安範洛), 한국관광협회 이사 안운락(安雲洛), 의학박사 안진락(安鎭洛) 등이 있다.

[활동 사항]

안귀련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출중하고 덕을 갖춰 학문을 닦아 크게 성취하였다. 1931년 경기도 시흥시 녹동서원(鹿洞書院)에서 개최된 ‘조선팔도유림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여 중국 곡부 병화 후에 위문사(慰問使) 파견을 위한 회의에서 안승구(安承龜)와 박연조(朴淵祚) 두 사람을 선정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고을의 선비인 한덕연(韓德鍊)·이태일(李泰一)·이운(李澐) 등과 교유하고, 서울의 윤용구(尹用求)·이의덕(李義悳)·정만조(鄭萬朝) 등과도 도의로 사귀었다.

[학문과 저술]

인쇄본인 6권 3책의 『죽남유고(竹南遺稿)』가 있다.

[묘소]

안귀련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이곡(梨谷) 상항(上項)에 해좌(亥坐) 향으로 있으며, 이호대(李好大)의 갈문(碣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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