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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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生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묘소|단소 | 청동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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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무주 |
대표 관직 | 홍문관 직제학 |
[정의]
조선 전기 개국 공신으로 충청남도 보령에 묻힌 문신.
[개설]
김생려는 태종(太宗)[재위: 1400~1418] 대의 문신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백성들과 형제같이 지내는 등 선정(善政)을 배풀어 김종서 장군의 6진 개척에 큰 도움을 주었다.
[가계]
본관은 무주(茂州)이다. 무주 김씨 시조 김성(金晟)의 두 아들 중 장남이다.
[활동 사항]
김생려는 무주 김씨 집안으로 전라도 무주의 오랜 토착세력이었다. 김생려는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쳤다. 함경도 순문사(巡撫使) 겸 북평사(北評事)로 재직할 당시에는 백성들과 형제같이 지내는 등 선정을 베풀어 야인(野人)[여진족]들도 친숙하게 따랐다. 그래서 김종서 장군이 우리나라 북방의 경계선을 긋는 6진 개척에 큰 도움을 주었다. 조선 초기 개국 공신으로 태종의 총애를 받아 의금부(義禁府)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홍문관(弘文館) 직제학(直提學)에 올랐다.
김생려의 고손자 김선지(金善之)는 집현전(集賢殿) 교리(校理)로 문종(文宗)[재위: 1450~1452]으로부터 어린 단종을 부탁 받은 18학사 중 한 사람이었고, 훗날 단종 복위를 도모하는 사육신과 뜻을 같이하였다가 참형을 당하였다. 이에 김선지의 후손들이 경기도 수원 지역에 숨어 있다가 곧 충청도 서해안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보령을 비롯해 홍성, 예산, 당진, 서산, 태안 등에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보령에 터를 잡은 무주 김씨 후손들은 김생려의 묘를 보령에 조성하고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묘소]
김생려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청동(靑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