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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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漪 |
이칭/별칭 | 죽포(竹浦),청의(淸義),문충(文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81년 - 김응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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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4년 - 김응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24년 - 김응의 자헌대부 병조판서 증직 |
추모 시기/일시 | 1624년 - 김응의 시호 문충(文忠) 추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1년 - 김응의 묘비 건립 |
묘소|단소 | 김응의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옥동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통천 |
대표 관직 | 행벽동군수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개설]
김응의(金應漪)[1581~1624]는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을 평정하다가 개성에서 순절하였다.
[가계]
본관은 통천(通川), 호는 죽포(竹浦), 자는 청의(淸義),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보령 남포(藍浦) 입향조 김훈(金勛)의 현손이며, 판도판서(版圖判書) 김원등(金瑗登)의 7세손이다.
[활동 사항]
김응의는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 때 관직에 올라 통정대부 행벽동군수(通政大夫 行碧潼郡守)를 지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군사를 이끌고 반군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김응의의 문집 『죽포집(竹浦集)』에는 이괄의 난이 벌어지자 각 군 수령에게 모병하여 거의(擧義)할 것을 청하는 내용의 첩보 「이첩각군청거의문(移牒各郡請擧義文)」과 의병을 모집하기 위한 「소모의병문(召募義兵文)」이 수록되어 있다.
김응의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보령시와 서천군 비인 지역에 세거해 오고 있다.
[학문과 저술]
김응의의 생애와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내장원경(內藏院卿)을 지낸 9대손 김윤환이 엮은 『죽포집(竹浦集)』이 전한다.
[묘소]
김응의의 묘소는 서천군 비인에 있다가 보령시 남포면 옥동리 선산으로 이장되었다. 9대손 김윤환(金閏煥)이 1921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광해군은 이괄의 난이 평정되자 공주에서 환궁한 후에 김응의에게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 兵曹判書)를 증직하였으며, 문충(文忠)의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