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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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泰廷 |
이칭/별칭 | 형언(亨彦),송암(松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41년 - 김태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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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1년 - 김태정 진사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569년 - 김태정 알성문과에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77년 - 김태정 이준백과 복상 문제로 대토론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588년 - 김태정 사망 |
묘소|단소 | 김태정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독정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광산 |
대표 관직 | 전라도관찰사 |
[정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개설]
김태정(金泰廷)[1541~158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인종의 비 사후 복상(服喪)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가까이하지 않아 기축옥사(己丑獄事)의 화를 피하였다.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형언(亨彦)이다. 할아버지는 김문서(金文瑞), 아버지는 찰방 김백간(金伯幹), 어머니는 명원군(明原君) 이호(李顥)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태정은 고려 말부터 보령 지역에 세거했던 광산 김씨가의 후손이다. 일찍이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견문을 넓혔고, 1561년 진사시 입격, 1569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인종(仁宗)[재위: 1544~1545]의 비 인성왕후(仁聖王后)[1514~1577]가 하세(下世)하였을 때 빈소의 예관으로 당시 대사헌 이준백과 복상 문제로 대토론을 주도하였다. 1585년(선조 18)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 정여립이 전주에 살면서 가까이하고자 하였으나, 정여립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후에 기축옥사가 일어나 정여립의 무리가 모반(謀反)의 혐의로 박해를 받게 되자 주변에서 김태정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후손이 보령 지역에 계속 세거하면서 묘역을 조성하고 관리하였다.
[묘소]
김태정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독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