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83
한자 李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 이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이완 진전을 모시고 영변에 감.
몰년 시기/일시 1648년연표보기 - 이완 사망
거주|이주지 은거지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완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화산동 화현지도보기
성격 왕족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 사섬사주부 한성겸참군

[정의]

임진왜란 이후 충청남도 보령에 정착한 왕족.

[개설]

이완(李琬)[1577~1648]은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1480~1509]의 증손으로 임진왜란 이후 보령에 정착하여, 그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하며 완원군파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아버지는 완원군의 증손인 부흥도정(傅興都正) 이몽열(李夢說)[1542~1607]이다.

[활동 사항]

이완은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로 사섬사주부(司贍寺主簿) 한성겸참군(漢城兼參軍)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宣祖)[재위: 1567~1608]가 파천할 때 진전(眞展)[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을 모시고 영변까지 갔다가 큰형은 부산진전투에서 정발(鄭撥)[1553~1592]과 함께 순절하고, 둘째 형은 금산산투에서 조헌과 함께 순절하자 하직하고 내려와 파주의 선영에 의혼묘(義魂墓)로 모셨다.

아버지 이몽열이 보령에 거주하였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만년에 보령에 은거하였으며, 이완의 후손들이 보령 지역 전주 이씨 완원군파를 이루며 세거해 오고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화산동 화현에 조성되었다. 묘비의 비문을 우부승지 송영대(宋榮大)가 짓고 성균관장 최익(崔益)이 써 1917년에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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