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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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牧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황교리·죽청리·관당리|천북면 낙동리|오천면 원산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문광균 |
폐지 시기/일시 | 1427년 - 토진곶 목장 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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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431년 - 토진곶 목장 우마장으로 다시 개장 |
폐지 시기/일시 | 1454년 - 토진곶 목장 다시 폐장 |
관할 지역 | 토진곶 목장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황교리·죽청리·관당리 일대 |
관할 지역 | 흥양곶 목장 -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낙동리 일대 |
관할 지역 | 원산도 목장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일대 |
[정의]
조선 시대 충청도 보령 지역에서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서 말이나 소 등을 길렀던 곳.
[제정 경위 및 목적]
과거에 말과 소는 운반·이동·동력의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가는 정책적으로 필요한 말이나 소 등을 기르기 위하여 충청도 보령 지역을 비롯해 전국에 목장을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보령 지역에 있던 목장 중에 토진곶 목장에 대해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옛 목장이 1개 있다. 토진곶에 있다. 둘레가 16리 34보인데, 안의 토장(土場)이 8리 40보요, 석장(石場)이 7리 36보요, 목장(牧場)이 118보이다. 다만 도랑물만 있고, 또 띠와 고사리 풀만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홍양곶 목장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둘레 49리 339보, 토장(土場)이 1리 94보, 목장(木場)이 1리 62보, 말이 437필이 있다.”라고 하였다.
[내용]
조선 시대 보령 지역에는 토진곶(土津串) 목장, 홍양곶(興陽串) 목장, 원산도(元山島) 목장이 설치되어 국용(國用)의 말을 사육하였다. 토진곶 목장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황교리·죽청리·관당리 일대였으며, 현재 석성(石城), 토성(土城)으로 연결된 약 11㎞에 이르는 목장성이 있다. 홍양곶 목장은 보령시 천북면 낙동리 일대에 있었다. 원산도 목장은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일대에 있었다. 홍양곶과 원산도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소속이었지만 지방 제도가 개편되면서 현재는 보령시 소속이다.
[변천]
토진곶 목장은 목장의 말을 서산으로 옮기자는 논의와 함께 1427년(세종 9) 폐장되었고, 1431년(세종 13) 우목장으로 다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세종 초기에 완전히 폐장된 것으로 보인다. 토진곶 목장이 폐장된 이유는 성벽 관리가 어려웠으며, 수초(水草)가 나쁘고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기록으로 보면, 토진곶 목장은 고려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양곶 목장은 효종(孝宗)[재위: 1649~1659] 이전에 서산에 이속된 후 폐장되었다. 원산도 목장은 1699년(숙종 25) 서산에 이속시키고, 수군우후(水軍虞候)가 조운선(漕運船)을 점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폐지되었다.
[현황]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일대에 토진곶 목장성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목장성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때 보령 지역에 있었던 목장의 크기와 역할 등을 알 수 있는 곳으로서 보령 지역사 복원에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