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83
한자 夜學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야학운동, 보령군 대천면 궁촌리 야소교회당 야학 개설
발생|시작 장소 야소교회당 -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궁촌리

[정의]

1920년대 보령 지역에서 근로청소년을 위해 야간에 시행한 근대적 교육운동.

[역사적 배경]

1900년대 사립학교에 의한 근대 교육이 확산되는 가운데 근로청소년을 위한 야학도 실시되었다. 계몽단체 활동은 근대 교육 보급에 이바지하였다. 이는 사립학교 설립운동 기반을 지방으로 확대시키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열의와 달리 대부분 교육기관들이 설립된 지 1~2년 만에 통폐합되는 등 교육활동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는 민중경제의 파탄과 항일의병전쟁 확산에 따른 사회적인 불안 등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경과]

충청남도를 포함한 충청 지역 사립학교 중 교세를 발전시킨 학교 대부분은 주민 부담에 의한 의무교육 형태로 운영되었다. 「사립학교령」이나 「기부금품 모집 취체 규칙」 등은 근대 교육운동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교육 법령이었기 때문에, 계몽론자들은 비교적 규제가 거의 없는 야학운동에 주목하였다.

충청남도의 야학운동은 공주군 진명야학교 설립으로 시작되었다. 탁지부주사인 김영두, 김우진, 은행원 이남식, 당지 지역 유지 이현주와 박동환 등은 학교를 설립하고 직접 운영하였다. 교과목은 경제, 산술, 부기, 상업일반 등이었다. 학생은 주로 상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청소년과 중등 교육기관 입학을 원하는 청소년이었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야학운동은 192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천면 궁촌리 야소교회당에서 1922년부터 야학을 개설하고, 일반 유지급 노동자 계급을 위하여 갑·을·병 3개 반을 운영하였다. 교육 과목은 영어, 지리, 한문, 일어, 산술, 작문, 주산 등이었다. 야학 운영시간은 매일 오후 7시 반부터 12시까지였다. 김낙권, 이종권, 백재준, 박영기, 홍승구 등이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약 60여 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1923년에는 야학을 확장하기 위해 건물 세우기도 하였으며, 1925년 이후부터는 웅천정일노농회를 중심으로 야학운동이 펼쳐졌으며, 당시 보령군 주산면 주야리[현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에서도 야학이 운영되는 등 보령 지역에서 야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야학운동은 근대 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와 충청남도 지역의 중등교육기관 설립에 영향을 미쳤다. 보령 지역 사립중학교 발기회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추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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