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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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 警察墓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을경 |
조성 시기/일시 | 1985년 10월 21일 - 이어니재 경찰묘지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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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시기/일시 | 1985년 10월 21일 - 이어니재 경찰묘지, 6·25 전몰 경찰관의 비 이전 |
개축 시기/일시 | 2007년 - 이어니재 경찰묘지, 재정비 및 만세보령지킴터로 개칭 |
현 소재지 | 이어니재 경찰묘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 |
성격 | 묘역 |
관련 인물 | 총경 정철모|경위 김낙이|경사 김영록|경사 김한기|경사 김희용|경사 박동화|경사 박원배|경사 임형식|경사 손창수|경사 신정호|경사 이도열|경사 이희영|경사 이준식|경사 임헌호|경사 전남전|경사 추백수 |
[정의]
6·25전쟁 때 충청남도 보령의 주산면에 주둔한 천안철도경찰대를 공산군이 기습 공격하여 6명이 전사하고 10명이 포로로 붙잡혔다가 총살 당해 합장된 장소.
[개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초 보령 지역은 공산군에게 점령당한 곳이었다. 그런데 공산군을 방어하기 위해 장항으로 후퇴했던 보령경찰들과 천안철도경찰대원들이 다시 비인에 집결하여 보령 주산면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철모 총경이 지휘하는 천안철도경찰대는 이때 공산군의 기습을 받아 6명은 현장에서 전사하고, 정철모 총경을 비롯하여 10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현장에서 전사한 6명은 다음날 마을 사람들에 의해 야룡리 산조개마을 산기슭에 묻혔지만, 포로로 잡힌 10명은 웅천자위대원들에게 인계되어 웅천지서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7월 27일 오후 2시 이어니재에서 총살을 당하였다. 총살된 10명 중 2명은 가족에게 인계되었고, 나머지 8명의 시신은 주민들에 의해 수습되어 합장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묘지 입구에 있는 큰 소나무 자리가 당시 매장한 지점이다.
[변천]
1985년 10월 21일 이어니재에 있던 8개의 위와 주산에 있던 6개의 위의 시신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큰 묘를 조성하였으며 각종 비도 건립하였다. 보령경찰서 안에 위치한 6·25 전몰 경찰관의 비도 이곳으로 옮겼다. 뒤이어 2007년에는 이곳을 재정비하면서 ‘만세보령지킴터’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금석문]
6·25 전몰 경찰관의 비에는 주산전투의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명단은 총경 정철모, 경위 김낙이, 경사 김영록, 경사 김한기, 경사 김희용, 경사 박동화, 경사 박원배, 경사 임형식, 경사 손창수, 경사 신정호, 경사 이도열, 경사 이희영, 경사 이준식, 경사 임헌호, 경사 전남전, 경사 추백수 등이다.
[현황]
이어니재 경찰묘지에서는 매년 새해 첫날, 경찰의 날, 현충일 등에 보령시와 보령경찰서가 함께 참배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