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06
한자 金商悳
이칭/별칭 金相德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2년연표보기 - 김상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김상덕 홍주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김상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김상덕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도보기
묘소 김상덕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진당산지도보기 기슭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홍주의병 참가

[정의]

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개설]

김상덕(金商悳)[1852~1924]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출신으로, 1906년 민종식(閔宗植)[1861~1917]이 이끄는 홍주의병대에서 군사장(軍師將)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김상덕은 1888년(고종 25)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규장각 직각과 대사성, 인천 감리사 등의 관직을 거쳐 1896년 2월 이승우(李勝宇)의 후임으로 홍주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관찰사의 직을 받고 부임한 김상덕은 오히려 홍주의병을 석방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는 바람에 그해 5월 관직에서 해임되었고, 2년 유배형을 받고 고군산도에 유배되었다. 김상덕의 활동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은 “내각에서 보외(補外)[조선 시대에,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를 징계하여 지방 수령으로 좌천시키던 일]된 홍주부 관찰사 김상덕이 처의(處義)[의리를 지킴]한 것과 관련하여 징계를 주청하니, 제칙(制勅)[황제의 칙령]을 내리기를 우선 본 벼슬을 해임시키고, 법부에서 율에 따라 처리하라.”라고 하였다.

김상덕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 1906년에는 홍주의병에 참여하여 민종식의 휘하에서 군사장으로 활약하였다. 김상덕은 홍주성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일본군의 공격에 밀려 민가에 숨어 있다가 자진 체포되어 10년 유배형을 받고 다시 고군산도에 유배되었다.

김상덕은 재판정에서 “저는 불행하게도 지난해 10월에 새 조약의 변을 당하여 쓰리고 아픈 마음을 금치 못하여 곧장 자결하려고 한 것이 오래였습니다. 올해 4월에 전 참판 민종식이 일본을 반대하는 뜻으로 의병을 일으켜 홍주성에 들어왔는데, 죽기를 맹세하고 나라에 보답하자는 내용으로 신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의리상 사양할 수가 없어서 즉시 가 보았으나 신은 병들고 못나서 본래 의병이 될 역량이 없어서 단지 한 번 죽기를 맹세했을 뿐입니다. 얼마 후 무리들이 흩어지자 저는 난민들에게 밀려나 성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숨어 다녔는데, 하루를 사는 것이 하루의 욕을 보는 것이었으므로 본원에 자수하였습니다. 폐하에게 보고되어 속히 처단을 받음으로써 일본 감옥의 귀신이 되는 것을 면하도록 해 주신다면 신은 죽어서 영예를 얻을 뿐 아니라 실로 나라의 체모(體貌)[모양이나 갖춤새]가 바로잡히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김상덕은 석방된 후에는 보령시 천북면 용천으로 이사하여 강당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강당 옆에 임금을 사모한다는 의미의 천일대(天一臺)를 쌓고 매일 서울을 향해 재배하면서 자정(自靖)의 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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