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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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思聖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5월 4일 - 이사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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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이사성, 홍주의병 참여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8월 14일 - 이사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사성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읍 대창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홍주의병 소모장(召募將) 활동 |
[정의]
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개설]
이사성(李思聖)[1883~1949]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출신으로 민종식(閔宗植)[1861~1917]이 이끄는 홍주의병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이사성은 1906년 5월 민종식의 홍주의병에 가담하여 소모장(召募將)에 임명되었다. 홍주성에 들어가 선봉장 박영두(朴永斗)에게 소집장(召集將)의 첩지를 받고 의병을 모집하기 위하여 임천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곧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이한구(李漢龜)[1870~1935]도 선봉장 박영두에게 유격장이라는 첩지를 받은 후 이사성과 함께 임천·한산에서 군사를 모집하라는 전령을 받고 임천에 도착하였지만 같이 체포되었다. 이때 이춘경(李春京)[1882~?]은 선봉장 박영두에게 상등병으로 임명되어 남포군으로 가서 화약을 수송하고, 민종식(閔宗植)[1861~1917]의 지휘를 받아 포탄을 운반해 올 목적으로 충청남도 남포군(藍浦郡) 간제시(干堤市)로 갔다가 공주진위대 병사에게 체포되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같은 해 11월 2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소위 ‘정사(政事)를 변경할 목적으로 난을 일으키는 율(律)’로 유배 10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1906년부터 1923년까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림리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 1919년에는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주도하는 3·1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일경의 이목을 피해 부안군(扶安郡) 위도면 진리에서 은거하였으나 생활고로 인하여 7년간의 걸식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